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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산대군사당 - 월산대군 이정의 신위를 모신 사당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 427

조선 제9대 성종<成宗>의 친형인 월산대군 이정<李정>(1454∼1488>의 신위<神位>를 모신 사당이다. 사당은 묘소의 서쪽에 남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네모난 담장 중앙에 남향하여 솟을삼문을 세우고 그 안에 사당을 모셨는데, 담장은 개인 사당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장대석<長臺石>으로 하단을 3단 가량 축조하고 제2단의 장대석을 정교하게 치석하여 화염형<火焰形>의 배수구까지 갖춘 격식 있는 구조이다. 사당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전면 1칸은 제례의 기능에 맞추어 개방하였다. 지붕은 전후면에만 경사를 이루고 양 측면에 풍판<風板>을 덧대어 놓은 맞배지붕이며 처마는 서까래 위에 부연<浮椽>을 덧달아 놓지 않은 홑처마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은 장대석으로 한 단을 올려놓은 외벌대이고 그 바닥은 박석<薄石>으로 깔아 놓았다. 정면의 어칸은 양측의 협칸에 비해 약 2배 가량 넓게 되어 있는데 이는 제례 기능에 부합되도록 꾸며 놓은 것으로 보인다. 각 칸에는 모두 하부에 궁판이 있는 띠살문(세살문)을 달아 놓았는데 어칸은 네 짝이고 양 협칸은 외짝으로 되어 있다. 내부에는 '영종대왕어제제문<英宗大王御製祭文>'의 편액<扁額>이 있는데 영조가 친히 '석광사<錫光祠>'라는 편액을 내렸으며, 정조<正祖>·순조<純祖> 때는 조정에서 신하를 보내어 왕을 대신해서 제사를 올리기도 하였다. 내부 중앙의 후면에 신위가 모셔져 있고 그 옆에 신주를 운반할 때 사용하는 요여<腰與>가 보존되어 있다. 이 사당이 처음 창건된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숙종<肅宗> 19년(1693) 이전에 이미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의 건물은 정조 10년(1786)에 중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당의 앞에는 수령 500년이 넘은 회화나무가 고고한 자태로 사당을 지키고 있다.

[승용차]
시청-원신동사무소 부근에 표지판이 있다

[대중교통]
좌석버스(800번) : 시청 - 원신동사무소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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