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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천서원지 - 동·서재와 사당만 있는 특이한 배치 형식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여주군 금사면 이포리 산6-1

조선 중종<中宗>∼효종<孝宗> 때의 명현<名賢>인 모재 김안국<慕齋 金安國>,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치재 홍인우<치齋 洪仁祐>, 오리 이원익<梧里 李元翼>, 수몽 정엽<守夢 鄭燁>, 택당 이식<澤堂 李植>, 나재 홍명구<懶齋 洪命耉>, 기천 홍명하<沂川 洪命夏>선생 등 여덟 분의 위패가 봉안된 서원이 있던 터이다. 기천서원은 선조<宣祖> 13년(1580)에 창건되었는데,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인조<仁祖> 3년(1625)에 중건되었고 그 해 사액되었다. 그 후 대원군<大院君>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된 것으로 추정된다. 1937년에는 서원터 옆에 모현사<慕賢祠>가 중건되었고 1978년에는 옛터에 사당이 복원되었으며 최근에는 부속 건물들도 복원되어 옛 모습을 되찾았다. 기천서원은 마을 뒤쪽의 야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복원된 상태로는 경사진 대지의 아래쪽 터에 동·서재<東·西齋>가 위치하고 윗쪽 터에는 사당이 자리잡아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갖추었는데 강당 없이 동·서재만 있어 특이하다. 서원 동쪽 언덕에는 모현사가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翼工系> 맞배집인데 전면에는 개방된 퇴칸이 있고 내부에는 여덟 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동·서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익공계 맞배집으로 익공 없이 주두<柱頭>만 사용되었다. 모현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소로수장 팔작집인데 건물 규모에 비하여 부재 단면이 작은 편이다. 기천서원은 최근에 복원되었으나 강당 없이 동·서재와 사당만 있는 특이한 배치 형식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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