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78
차령산맥 줄기의 산간 마을에 위치한 조선 후기의 살림집이다. 안채 마루도리에는 정조<正祖> 21년(1797)의 명문<銘文>이 남아 있어 안채와 사랑채가 이 시기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유지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아 매우 퇴락되었다. 이 집은 서운산 남쪽 계곡의 청룡리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남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넓은 바깥마당에 면하여 一자형의 행랑채가 있고, 그 뒤의 안마당을 중심으로 一자형 사랑채와 ㄱ자형 안채가 연결된 ㄷ자형의 본채가 튼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 남쪽에는 중문<中門>이 나 있어 최근 벽돌조로 개축된 행랑채에 연결된다. 사랑채는 4칸반 규모의 민도리집인데 남쪽에 툇마루가 딸린 2칸온돌방이 있고 북쪽에는 1칸 반 대청이 있어 안채 건넌방에 이어져 있다. 장대석<長臺石> 기단에 놓인 높은 초석 위에 네모 기둥이 세워져 오량<五樑>의 지붕 가구가 짜 올려져 있다. 안채는 1칸 건넌방, 3칸 대청, 2칸 안방이 일렬로 배열되고 안방 앞에서 꺾이어 2칸 부엌이 있다. 건넌방 툇마루는 대청보다 약간 높은데 사랑방으로 통하는 문이 나 있고 마루 아래에는 아궁이가 있다. 기단과 지붕 가구는 사랑채와 비슷하나 부엌 부분은 삼량가구(기둥 위에 보와 직각으로 놓여 서까래와 맞닿아 지붕 무게를 직접 받는 도리의 수가 3개인 지붕틀)인 점이 다른다. 이 집은 안채와 사랑채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남녀가 사용하는 영역이 구분되어 있는 특이한 공간 구조를 보여 주고 있다.
차령산맥 줄기의 산간 마을에 위치한 조선 후기의 살림집이다. 안채 마루도리에는 정조<正祖> 21년(1797)의 명문<銘文>이 남아 있어 안채와 사랑채가 이 시기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유지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아 매우 퇴락되었다. 이 집은 서운산 남쪽 계곡의 청룡리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남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넓은 바깥마당에 면하여 一자형의 행랑채가 있고, 그 뒤의 안마당을 중심으로 一자형 사랑채와 ㄱ자형 안채가 연결된 ㄷ자형의 본채가 튼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 남쪽에는 중문<中門>이 나 있어 최근 벽돌조로 개축된 행랑채에 연결된다. 사랑채는 4칸반 규모의 민도리집인데 남쪽에 툇마루가 딸린 2칸온돌방이 있고 북쪽에는 1칸 반 대청이 있어 안채 건넌방에 이어져 있다. 장대석<長臺石> 기단에 놓인 높은 초석 위에 네모 기둥이 세워져 오량<五樑>의 지붕 가구가 짜 올려져 있다. 안채는 1칸 건넌방, 3칸 대청, 2칸 안방이 일렬로 배열되고 안방 앞에서 꺾이어 2칸 부엌이 있다. 건넌방 툇마루는 대청보다 약간 높은데 사랑방으로 통하는 문이 나 있고 마루 아래에는 아궁이가 있다. 기단과 지붕 가구는 사랑채와 비슷하나 부엌 부분은 삼량가구(기둥 위에 보와 직각으로 놓여 서까래와 맞닿아 지붕 무게를 직접 받는 도리의 수가 3개인 지붕틀)인 점이 다른다. 이 집은 안채와 사랑채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남녀가 사용하는 영역이 구분되어 있는 특이한 공간 구조를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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