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북구 용봉동 1004-4
이 유품은 대한제국시대에 활약하였던 죽파 김봉선(<竹坡 金鳳善>:1856∼1909)이 남긴 고문서와 대례복<大禮服> 등이다. 김봉선은 전북 남원 출신으로 농상공부참서관<農商工部參書官>, 궁내부비서관<宮內部秘書官>, 경리원기사<經理院技師> 등을 역임하면서 고종<高宗>을 가까이에서 보좌하였다. 그는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뒤에 상소문을 올려 울분을 토하였는데 그 내용이 고품초<告稟草>에 실려 있다. 이 상소문을 올린후 정3품 당상관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하였으며 곧 궁내부비서관이 되어 고종의 밀명을 수행하게 된다. 을사보호조약으로 실추된 국권회복 방도와 그에 관련된 정보수집·헤이그밀사의 인물추천과 파견 등이 그 임무다. 그러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의 기대가 무너지고 오히려 고종이 물러나게 되자 그는 모든 밀명을 가슴속에 묻어둔 채 낙향하였다. 국권회복의 뜻을 이루지 못한 그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2년만에 병사하였다. 고문서에는 고품초외에 고종의 밀명이 담긴 고종황제 어찰<御札>과 교지<敎旨>, 칙명<勅命>, 교첩<敎牒>, 시권<試券>, 통문<通文>, 간찰<簡札>, 이력서, 증서 등 48점이 있으며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대례복은 하의가 없어져 상의와 패도<佩刀>, 대례모<大禮帽>, 호패<號牌>, 인장<印章> 등 5점만이 남아 있다.
이 유품은 대한제국시대에 활약하였던 죽파 김봉선(<竹坡 金鳳善>:1856∼1909)이 남긴 고문서와 대례복<大禮服> 등이다. 김봉선은 전북 남원 출신으로 농상공부참서관<農商工部參書官>, 궁내부비서관<宮內部秘書官>, 경리원기사<經理院技師> 등을 역임하면서 고종<高宗>을 가까이에서 보좌하였다. 그는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뒤에 상소문을 올려 울분을 토하였는데 그 내용이 고품초<告稟草>에 실려 있다. 이 상소문을 올린후 정3품 당상관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하였으며 곧 궁내부비서관이 되어 고종의 밀명을 수행하게 된다. 을사보호조약으로 실추된 국권회복 방도와 그에 관련된 정보수집·헤이그밀사의 인물추천과 파견 등이 그 임무다. 그러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의 기대가 무너지고 오히려 고종이 물러나게 되자 그는 모든 밀명을 가슴속에 묻어둔 채 낙향하였다. 국권회복의 뜻을 이루지 못한 그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2년만에 병사하였다. 고문서에는 고품초외에 고종의 밀명이 담긴 고종황제 어찰<御札>과 교지<敎旨>, 칙명<勅命>, 교첩<敎牒>, 시권<試券>, 통문<通文>, 간찰<簡札>, 이력서, 증서 등 48점이 있으며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대례복은 하의가 없어져 상의와 패도<佩刀>, 대례모<大禮帽>, 호패<號牌>, 인장<印章> 등 5점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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