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북구 충효동 718
풍암정은 원효계곡<元曉溪谷>의 하류에 자리잡고 있다. 이는 선·인조<宣·仁祖>때 활동하였던 풍암 김덕보(<楓巖金德普> 1571∼?)가 지은 정자이다. 풍암은 임진왜란 때에 큰형 덕홍<德弘>이 금산<錦山> 싸움에서 순절하고, 중형 덕령<德齡>이 의병장으로 크게 활약하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자 이를 슬퍼하여 칩거하였다. 그 후 세상을 잊고자 하는 뜻으로 이곳 무등산의 수려한 원효계곡을 찾아 터를 잡고 도학과 경륜을 쌓으며 은둔생활을 하였다. 후에 의열사<義烈祠>에 추배<追配>되었다. 정자에는 풍암정사<楓巖亭舍> 현판과 정홍명<鄭弘溟>이 쓴 풍암기<楓巖記>, 그리고 임억령<林億齡>, 고경명<高敬命>, 안방준<安邦俊>, 정홍명, 풍암 등의 시를 새긴 판각이 걸려 있다. 임억령, 고경명 등의 제영<題詠>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이름있는 시인들이 이곳에 출입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건물은 정·측면 모두 두칸으로 좌우 한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팔작기와 지붕으로 처마는 홑처마이다. 큰 덤벙주초를 놓고 배홀림을 보이는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중앙에만 팔각의 기둥을 세웠다. 문은 띠살문이며 우물마루를 구성하였다.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중앙은 우물천장으로 처리하였다. 우측에 거실 한칸을 두고 앞면과 좌측은 판자마루로 돌렸다.
풍암정은 원효계곡<元曉溪谷>의 하류에 자리잡고 있다. 이는 선·인조<宣·仁祖>때 활동하였던 풍암 김덕보(<楓巖金德普> 1571∼?)가 지은 정자이다. 풍암은 임진왜란 때에 큰형 덕홍<德弘>이 금산<錦山> 싸움에서 순절하고, 중형 덕령<德齡>이 의병장으로 크게 활약하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자 이를 슬퍼하여 칩거하였다. 그 후 세상을 잊고자 하는 뜻으로 이곳 무등산의 수려한 원효계곡을 찾아 터를 잡고 도학과 경륜을 쌓으며 은둔생활을 하였다. 후에 의열사<義烈祠>에 추배<追配>되었다. 정자에는 풍암정사<楓巖亭舍> 현판과 정홍명<鄭弘溟>이 쓴 풍암기<楓巖記>, 그리고 임억령<林億齡>, 고경명<高敬命>, 안방준<安邦俊>, 정홍명, 풍암 등의 시를 새긴 판각이 걸려 있다. 임억령, 고경명 등의 제영<題詠>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이름있는 시인들이 이곳에 출입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건물은 정·측면 모두 두칸으로 좌우 한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팔작기와 지붕으로 처마는 홑처마이다. 큰 덤벙주초를 놓고 배홀림을 보이는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중앙에만 팔각의 기둥을 세웠다. 문은 띠살문이며 우물마루를 구성하였다.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중앙은 우물천장으로 처리하였다. 우측에 거실 한칸을 두고 앞면과 좌측은 판자마루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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