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조선 중·명종<中·明宗>간의 문신 설강 유사(<雪江 柳泗>:1502∼1571)가 만년에 지은 정자이다. 그 이름은 송<宋>나라 소강절<邵康節>이 말한 호가지의<浩歌之意>에 담긴 뜻을 취하여 지었다. 설강은 무장현감<茂長縣監>, 전라도사<全羅都事>, 종성부사<鍾城府事>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당시의 권신<權臣> 이량<李樑>의 모함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이곳에 이르러 유유자적하였다. 당대의 명류<名流>인 이황<李滉>, 이언적<李彦迪>, 오겸<吳謙> 등과 교분을 가졌고, 사위로 맞이한 김성원<金成遠>과 후대의 이안눌<李安訥> 등의 그의 시를 즐겨 차운<次韻>하였다. 이 정자는 명종 13년(1558)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어 고종<高宗> 8년(1871)에 중건되었다. 노평산<盧平山> 기슭에 위치하여 앞에는 극락강<極樂江>과 황룡강<黃龍江>이 합류하는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건물은 정·측면이 다같이 세칸인 골기와 팔작지붕으로 본디 중앙에 거실을 두었으나 중수<重修>할 때 이를 없애 전부 우물마루로 되어 있다. 건물중앙에 마루방을 두었으며 사방좌우 모서리에는 한칸씩의 낮은 난간을 두었다. 사방중앙칸의 가운데는 댓돌을 두어 출입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이 곳에는 호가정 현판을 비롯하여 설강의 호가정기<浩歌亭記>, 기정진의 호가정 중수기, 그 밖에 오겸, 이안눌, 김성원 등의 누정제영<樓亭題詠>을 새긴 편액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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