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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동정 - 국사를 의논하고 동약이나 향약의 시행처로 사용

by 넥스루비 2007. 8. 7.
광주 남구 양과동 166-1

이 정자는 마을 동산에 있으며 다른 이름은 간원대<諫院臺> 또는 고경명<高敬命>의 별서<別墅>라고도 한다. 간원대는 이곳 출신들이 간관<諫官>으로 많이 배출되어 여기에서 국사를 의논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은 동약<洞約>이나 향약<鄕約>의 시행처로 사용되었다. 삼한시대 또는 신라시대에 건립되었다고 하나 정자내에 있는 동정입의서<洞亭立議序>, 향약 등의 현게<縣揭>와 중수기<重修記>, 고경명의 제양과모정<題良과茅亭>, 박광옥<朴光玉>의 차유곡모정운<次柳谷茅亭韻>, 제간원대<題諫院臺>등의 현판이 있으며 관련된 문서는 1648∼1889년에 작성된 동계좌목<洞契座目> 2권과 상소문 5매가 있고 제액<題額>은 송시열<宋時烈>이 쓴 것이다. 정자의 평면은 정면 세칸, 측면 두칸으로 맞배지붕의 기와집으로 바람막는 판이 설치되어 있다. 기단은 바른층 막돌쌓기를 하고 덤벙주초를 놓고서 원형기둥을 세웠다. 사방은 벽이 없이 개방된 공간이며 우물마루를 깔고 연등천장을 하였다. 또한 목재의 현상이나 기둥 상부의 헛첨차만을 이룬 단순한 모양은 공포<空砲>완성 바로 직전의 형태로 오래된 구조물임을 알 수 있다. 기와의 문양은 숫막새는 날개를 펴고 있는 백조 문양이며 암막새는 거북선 모양이다. 이 건물은 관련문서와 건축양식으로 보아 조선시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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