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 203
흥국사의 주법당은 약사전이다. 이 약사전은 조선 후기 사찰 건물의 전형적인 공간 구성 특성인 장식적인 성향이 짙은 건물이다.
1770년 영조(46년)가 이 곳에 와 이 절의 약사불이 나라를 흥하게 한다고 하여 절 이름을 종전 흥서암에서 흥국사로 바구고 약사전을 중창했다고 전해진다. 궁궐의 상궁들이 머무르면서 선학(禪學)을 공부했다고도 한다. 약사전의 현판 글씨는 영조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 고종 4년(1867년) 뇌응 스님이 약사전을 다시 중창했다.
약사전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벽은 흙벽이 아니라 두꺼운운 나무판자로 된 판장벽이다.
평주의 기둥 머리에는 수평재인 창방과 평방, 그 위에 놓인 주두를 붙잡는 부재인 안초공(按草工)이 결구되었다. 정면 양측 기둥의 안초공은 용머리 모양으로 조각되었다.
기둥 위에 공포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각 칸에 2구씩의 주간포가 놓여진 다포계 형식. 지붕은 사면 모두 처마가 있는 팔작지붕이다. 천장은 전후 좌우의 측면이 경사지게 꾸며진 빗천장이다. 내부에는 한 끝은 기둥 머리에 짜이고 다른 끝은 대들보의 중간에 걸치는 보인 충량머리의 용 머리형 조각과 안초공의 조각, 기둥 위에 촛가지와 쇠서를 여러 겹으로 꾸며서 도리를 걸치게 만든 공포살미의 조각이 화려하다.
흥국사의 주법당은 약사전이다. 이 약사전은 조선 후기 사찰 건물의 전형적인 공간 구성 특성인 장식적인 성향이 짙은 건물이다.
1770년 영조(46년)가 이 곳에 와 이 절의 약사불이 나라를 흥하게 한다고 하여 절 이름을 종전 흥서암에서 흥국사로 바구고 약사전을 중창했다고 전해진다. 궁궐의 상궁들이 머무르면서 선학(禪學)을 공부했다고도 한다. 약사전의 현판 글씨는 영조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 고종 4년(1867년) 뇌응 스님이 약사전을 다시 중창했다.
약사전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벽은 흙벽이 아니라 두꺼운운 나무판자로 된 판장벽이다.
평주의 기둥 머리에는 수평재인 창방과 평방, 그 위에 놓인 주두를 붙잡는 부재인 안초공(按草工)이 결구되었다. 정면 양측 기둥의 안초공은 용머리 모양으로 조각되었다.
기둥 위에 공포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각 칸에 2구씩의 주간포가 놓여진 다포계 형식. 지붕은 사면 모두 처마가 있는 팔작지붕이다. 천장은 전후 좌우의 측면이 경사지게 꾸며진 빗천장이다. 내부에는 한 끝은 기둥 머리에 짜이고 다른 끝은 대들보의 중간에 걸치는 보인 충량머리의 용 머리형 조각과 안초공의 조각, 기둥 위에 촛가지와 쇠서를 여러 겹으로 꾸며서 도리를 걸치게 만든 공포살미의 조각이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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