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군 태안읍 송산리 88
용주사가 창건된 조선 정조<正祖> 14년(1790)에 세워진 이 누각은 대웅보전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문루<門樓>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에 전면으로 1칸만큼 돌출시키고 나머지 2칸을 좌우의 요사채와 바로 연결시켰으며 뒤쪽 좌우에 누마루로 오르는 계단을 두었다. 전면 1열과 후면 어칸 좌우에는 사각형의 장초석<長礎石>을 세우고 그 위에 짧은 기둥을 놓아 마루귀틀을 받도록 하고, 나머지 부분은 요사채의 기단 위에 바로 초석을 놓고 누하주<樓下柱>를 세웠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면에서는 좌우의 요사채 기단과 천보루의 누하부<樓下部>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입면 구성에 있어서도 대웅보전으로 통하는 문루로서의 기능이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또한 대웅보전 쪽에서는 천보루가 단층 건물로 느껴지도록 하여 좌우의 요사채와 함께 마당의 윤곽을 단정하게 정리하였다. 전후로 길게 귀틀(마루를 놓을 때 먼저 굵은 나무로 가로나 세로로 짜 놓은 틀)을 건너질러 누마루를 구성하고 누하부의 내부기둥은 생략하였다. 누마루 전면과 좌우 돌출 부분에만 난간을 돌리고, 대웅전 쪽에는 마루를 내밀지 않고 바로 머름 위에 창호를 구성하였다. 공포는 연봉이 조각된 이익공계로 초각<草刻> 문양은 대웅보전과 같으며,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구성되었다.
용주사가 창건된 조선 정조<正祖> 14년(1790)에 세워진 이 누각은 대웅보전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문루<門樓>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에 전면으로 1칸만큼 돌출시키고 나머지 2칸을 좌우의 요사채와 바로 연결시켰으며 뒤쪽 좌우에 누마루로 오르는 계단을 두었다. 전면 1열과 후면 어칸 좌우에는 사각형의 장초석<長礎石>을 세우고 그 위에 짧은 기둥을 놓아 마루귀틀을 받도록 하고, 나머지 부분은 요사채의 기단 위에 바로 초석을 놓고 누하주<樓下柱>를 세웠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면에서는 좌우의 요사채 기단과 천보루의 누하부<樓下部>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입면 구성에 있어서도 대웅보전으로 통하는 문루로서의 기능이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또한 대웅보전 쪽에서는 천보루가 단층 건물로 느껴지도록 하여 좌우의 요사채와 함께 마당의 윤곽을 단정하게 정리하였다. 전후로 길게 귀틀(마루를 놓을 때 먼저 굵은 나무로 가로나 세로로 짜 놓은 틀)을 건너질러 누마루를 구성하고 누하부의 내부기둥은 생략하였다. 누마루 전면과 좌우 돌출 부분에만 난간을 돌리고, 대웅전 쪽에는 마루를 내밀지 않고 바로 머름 위에 창호를 구성하였다. 공포는 연봉이 조각된 이익공계로 초각<草刻> 문양은 대웅보전과 같으며,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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