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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대웅보전 - 내·외부가 대단히 화려하게 장식된 건물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화성군 태안읍 송산리 188

용주사는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묘가 화산<花山>으로 옮겨진 다음 해인 정조<正祖> 14년(1790)에 화산의 오른쪽 자락인 성황산<城隍山> 아래에 능을 수호하고 명복을 빌어 주기 위해 창건되었다. 원래 이 자리는 통일신라 때인 문성왕<文聖王> 16년(854)에 창건되어 고려 광종<光宗> 3년(952)에 소실된 갈양사<葛陽寺>의 옛터였다고 전한다. 전체적인 배치는 대칭적이고 폐쇄적으로 구성되었다. 좌우로 7칸의 행랑을 둔 솟을삼문이 전면을 가로막고 있으며, 이 문을 통과하면 다시 누각과 좌우의 요사채가 막아 선다. 전면으로 돌출된 전면 5칸의 천보루<天保樓>와 전면쪽으로 두 개씩 구성된 좌우 요사채의 합각지붕(윗부분은 전후면만 지붕이 있어 측면에 합각이 생기고, 아랫부분은 네 면에 모두 처마가 구성되는 형태의 지붕, 팔작지붕이라고도 한다)이 매우 강렬하고 위압적인 느낌을 갖도록 한다. 대웅전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천보루 아래를 통과해야 하는데, 뒤쪽으로 가운데 3칸에만 계단을 만들고 좌우에는 요사채 기단을 연속시켜 대웅전 마당과 같은 높이의 축대를 쌓아 매우 폐쇄적인 느낌을 준다. 누하주<樓下柱>를 사각형 돌기둥으로 만들어 이러한 느낌을 더욱 강하게 하고 있다.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집이다. 지형 차를 이용하여 장대석<長臺石> 축대를 쌓고 그 위에 대웅보전을 놓아 돋보이도록 의도했다.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으로 구성되고 전면 어칸 좌우 기둥에는 용머리를 두었으며, 내부에는 각종 장엄물을 베풀어 내·외부가 대단히 화려하게 장식된 건물이다. 기단은 장대석을 사용하였는데 지형 차를 고려하여 전면에는 두벌대, 후면에는 외벌대로 구성하고 처마의 네 귀에는 활주<活柱>(지붕의 추녀 뿌리를 받치는 기둥)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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