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성시 양성면 동항리 114
향교는 서당에서 공부한 15세 이상의 양반 자제를 교육하던 시설이다. 양성향교는 조선 중종<中宗> 28년(1533)에 창건되어 영조<英祖> 50년(1774)에 중창되었고 1898년과 1917년에도 중수되었다. 최근에는 1985년에 중수되었다. 양성향교는 마을 후면 구릉 위의 완만한 경사지에 남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지의 앞쪽에 명륜당<明倫堂>이 있고 뒤쪽에는 대성전<大成殿>이 위치함으로써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을 갖추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翼工系> 맞배집인데, 전면에는 개방된 퇴칸이 있다. 규모가 작은 데도 불구하고 지붕 가구는 칠량<七樑>으로 결구되어 특이하다. 익공의형태는 비교적 견실하나 부재의 단면이 작고 자연 형상을 따라 휜 대들보가 사용된 것으로 미루어 후대에 많은 부분이 수리된 듯하다. 내부에는 공자<孔子>와 4성<聖>, 송나라와 우리 나라 20현<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집인데 중앙의 6칸 대청 좌우에 2칸씩의 온돌방이 있다. 익공 몸체에는 조각이 새겨져 있으며 대들보나 대공(대들보나 종보 위에 얹어 그 위의 보나 도리를 받쳐 주는 부재) 등 부재의 치목<治木>도 훌륭하므로 18세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전면 벽체 윗부분의 격자살창(바둑판 모양으로 가로세로 나무살을 꽂아서 만든 창)은 후대에 가설된 것이다. 양성향교는 명륜당과 대성전만 갖춘 조선 후기의 소규모 향교 형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향교는 서당에서 공부한 15세 이상의 양반 자제를 교육하던 시설이다. 양성향교는 조선 중종<中宗> 28년(1533)에 창건되어 영조<英祖> 50년(1774)에 중창되었고 1898년과 1917년에도 중수되었다. 최근에는 1985년에 중수되었다. 양성향교는 마을 후면 구릉 위의 완만한 경사지에 남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지의 앞쪽에 명륜당<明倫堂>이 있고 뒤쪽에는 대성전<大成殿>이 위치함으로써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을 갖추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翼工系> 맞배집인데, 전면에는 개방된 퇴칸이 있다. 규모가 작은 데도 불구하고 지붕 가구는 칠량<七樑>으로 결구되어 특이하다. 익공의형태는 비교적 견실하나 부재의 단면이 작고 자연 형상을 따라 휜 대들보가 사용된 것으로 미루어 후대에 많은 부분이 수리된 듯하다. 내부에는 공자<孔子>와 4성<聖>, 송나라와 우리 나라 20현<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집인데 중앙의 6칸 대청 좌우에 2칸씩의 온돌방이 있다. 익공 몸체에는 조각이 새겨져 있으며 대들보나 대공(대들보나 종보 위에 얹어 그 위의 보나 도리를 받쳐 주는 부재) 등 부재의 치목<治木>도 훌륭하므로 18세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전면 벽체 윗부분의 격자살창(바둑판 모양으로 가로세로 나무살을 꽂아서 만든 창)은 후대에 가설된 것이다. 양성향교는 명륜당과 대성전만 갖춘 조선 후기의 소규모 향교 형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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