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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태종무열왕릉비 - 독창적인 조각수법의 무열왕릉비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경주시 서악동 844-1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릉의 비, 높이 2.1m, 현재 귀부(龜趺)와 이수(이首)만 남아있을 뿐 비신은 소실되었다.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의하면 이 비는 무열왕이 승하한 661년에 건립 되었으며 비문은 김인문이 썼다고 하나 정확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

비의 아래에는 귀부를 놓고 위에는 이수를 얹는 형식은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이 비의 조각 수법은 독창적인 것이다.
귀부의 머리는 거북 모양으로 목은 높이 쳐들고 발을 기운차게 뻗고 있어 전체는 앞으로 전진하고 있는 느낌이다. 과감한 기상을 보여 주면서 표정은 과격하지 않고 오히려 명랑하다.

비좌(碑座)는 연꽃으로 이루어져 있고 귀갑은 4중의 육각형 귀갑문이 우수하게 조각되어 있다.
이수는 좌우 3마리씩 놓여있는 용이 서로 상대방의 앞 발을 꼬리로 꼬아 전체는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는데 다리의 표현, 용의 비늘은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다.
그 중앙에는 전서체로 「太宗武烈王之碑」라는 2행 8자가 양각되어 있어 이 명문에 의하여 무열왕릉이 신라역대 능묘 중에 피장자가 명확한 유일한 능이 되었다.

귀부와 이수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은 각자 생기가 있으면서도 전체와 조화되어 있으며 완전한 짜임새를 보여준다.
귀부의 머리나 귀갑의 외형, 이수등 그들의 윤곽은 완만한 곡선으로 단순화된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탄력성 있는 양감을 지니고 있어서 당시의 불상에서 볼 수 있는 충만한 조각성과 공통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통일신라의 초기 조각들이 보여주는 이상화된 사실주의 양식의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신라말기가 되면 귀부, 비신, 이수 셋으로 이루어지는 전체형식은 변하지 않으나 귀부와 이수, 각각의 조각양식은 격동적이고 율동적인 모습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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