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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영정 - 한석봉이 쓴『제일호산』이란 편액(扁額)이 걸려 있는 곳

by 넥스루비 2007. 8. 7.
광주 광산구 신창동 853

선창산<仙滄山>과 극락강<極樂江>이 마주치는 강변 대지 위에 있다. 지금은 강물과 강너비가 줄어들어 운치가 예같지 않으나 멀리 보이는 무등산의 위용은 장관이다. 풍영정은 명종 15년(1560)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를 지낸 김언거(<金彦据> 1503∼1584)가 벼슬을 물러난 뒤 고향에 돌아와 칠천(<漆川 >: 현 극락강)상류에 지은 정자이다.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퇴계 이황<退溪 李滉>,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升> 등의 학자들이 이곳에서 함께 학문을 논하였고, 한석봉<韓石奉>이 쓴『제일호산<第一湖山>』이란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김언거의 자<字>는 계진<季珍>, 호<號>는 칠계<漆溪>,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김정<金禎>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중종 20년(1525) 사마시<司馬試>에 올랐고, 1531년 문과병과<文科丙科>에 오른 뒤 옥당<玉堂>에 뽑혀 교리<校理>, 응교<應校>, 봉사시정<奉史侍正> 등이 내직<內職>을 거쳐 상주<尙州> 연안<延安>등 군수를 지낸 뒤 승문원 판교를 끝으로 고향에 내려왔다. 저서로는 죽와휘어<竹窩暉語>, 송사절요<宋史節要>, 역대명신간소초<歷代名臣諫蔬抄>, 가례초<家禮抄> 등이 있다. 풍영정에는 하서·퇴계·고봉 등 많은 문인들의 제영현판<題詠懸板>이 있으며, 풍영정 원운<風詠亭原韻>은 병조판서 조계원<趙啓遠>이 이곳을 지나면서 지은 것으로 그의 6대손 광주목사<光州牧使> 조진민<趙鎭敏>이 새겨 걸었다. 1948년 후손들이 지붕을 수리하였는데 당시의 기록이 풍영정수리후추모서실<風詠亭修理後追慕敍實> 현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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