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산시 와동 151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김여물<金汝물>의 애국 충정과 병자호란에서 청군에게 패하자 순절로써 열녀 정신을 지킨 4대 고부<姑婦>의 열녀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조정에서 하사한 정문<旌門>이다. 광덕산 자락 김여물의 묘역 아래에 자리잡은 이 건물에는 김여물의 충신 정문과 열녀 정문을 모셨다. 4대에 걸친 열녀는 장의공<壯毅公> 김여물의 후실<後室>인 평산신씨<平山申氏>, 김여물의 아들인 김류<金류>의 처 진주유씨<晋州柳氏>, 김여물의 손자 김경징<金慶徵>의 처 고령박씨<高靈朴氏>, 김여물의 증손자 김진표<金震標>의 처 진주정씨<晋州鄭氏>이다. 이들은 병자호란 때 적군에게 욕을 당하지 않으려고 강화도 강물에 몸을 던져 순절했다. 주위로 담장을 두르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민도리 겹처마 팔작집을 세웠는데, 가운데칸에는 민가 대문 형식의 문을 달고 '사세충렬문<四世忠烈門>'이라고 쓴 목판을 걸었다. 건물 안은 2칸으로 나뉘어져 있다. 우측 방은 마룻바닥으로 김여물의 충신 정문이 있다. 좌측 방 벽 중간 지점에는 안쪽으로부터 좌로 돌아가며 4대 열녀의 정문을 세웠다. 현재 건물은 1971년 중수한 것이며, 그 후 1983년 경기도에서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하면서 보수 공사를 했다.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김여물<金汝물>의 애국 충정과 병자호란에서 청군에게 패하자 순절로써 열녀 정신을 지킨 4대 고부<姑婦>의 열녀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조정에서 하사한 정문<旌門>이다. 광덕산 자락 김여물의 묘역 아래에 자리잡은 이 건물에는 김여물의 충신 정문과 열녀 정문을 모셨다. 4대에 걸친 열녀는 장의공<壯毅公> 김여물의 후실<後室>인 평산신씨<平山申氏>, 김여물의 아들인 김류<金류>의 처 진주유씨<晋州柳氏>, 김여물의 손자 김경징<金慶徵>의 처 고령박씨<高靈朴氏>, 김여물의 증손자 김진표<金震標>의 처 진주정씨<晋州鄭氏>이다. 이들은 병자호란 때 적군에게 욕을 당하지 않으려고 강화도 강물에 몸을 던져 순절했다. 주위로 담장을 두르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민도리 겹처마 팔작집을 세웠는데, 가운데칸에는 민가 대문 형식의 문을 달고 '사세충렬문<四世忠烈門>'이라고 쓴 목판을 걸었다. 건물 안은 2칸으로 나뉘어져 있다. 우측 방은 마룻바닥으로 김여물의 충신 정문이 있다. 좌측 방 벽 중간 지점에는 안쪽으로부터 좌로 돌아가며 4대 열녀의 정문을 세웠다. 현재 건물은 1971년 중수한 것이며, 그 후 1983년 경기도에서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하면서 보수 공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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