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의왕시 청계동 산11
청계산<淸溪山>에 자리잡은 이 사찰은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 충렬왕<忠烈王> 10년(1284)에 크게 중창되다었고 전한다. 조선 연산군<燕山君>이 도성 내에 있는 사찰을 폐쇄했을 때 봉은사를 대신하여 선종의 본산으로 정해졌던 유서 깊은 곳이다. 현재에 사찰 모습은 1955년 이후 역대 주지 스님들이 중수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전체 규모와 가람의 배치는 조선시대에 틀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 사찰 내에는 극락보전과 칠성각·봉향각·삼성각·요사 등의 건물이 있다. 극락보전은 이익공(기둥 중간에는 창방과 도리·장혀 사이에 화반을 놓고, 기둥 머리에서는 두공과 창방에 교차되는 상하 2개와 쇠서로 짜여진 공포 형식)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석재의 가공과 목재의 치목이 정교하며 화려한 단청이 돋보인다. 또한 지붕에는 취두(지붕마루의 양 끝에 얹는 새머리 모양을 새긴 장식 기와. 국가·사회적으로 격식이 높은 건물에 쓰인다)·용두·이수 등 고급의 장식물을 올려 전체적으로 매우 화려하고 고급스럽게 지어진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절 아래에는 사찰의 내력을 적은 사적비<寺跡碑> 2기가 있는데 이 중 하나는 숙종<肅宗> 15년(1689)에 조성된 것이다. 종각에는 숙종 27년에 만들어진 동종<銅鐘>이 있는데, 여기에 새겨진 글에 의하면 당시에는 청계산을 청룡산<靑龍山>이라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청계산<淸溪山>에 자리잡은 이 사찰은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 충렬왕<忠烈王> 10년(1284)에 크게 중창되다었고 전한다. 조선 연산군<燕山君>이 도성 내에 있는 사찰을 폐쇄했을 때 봉은사를 대신하여 선종의 본산으로 정해졌던 유서 깊은 곳이다. 현재에 사찰 모습은 1955년 이후 역대 주지 스님들이 중수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전체 규모와 가람의 배치는 조선시대에 틀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 사찰 내에는 극락보전과 칠성각·봉향각·삼성각·요사 등의 건물이 있다. 극락보전은 이익공(기둥 중간에는 창방과 도리·장혀 사이에 화반을 놓고, 기둥 머리에서는 두공과 창방에 교차되는 상하 2개와 쇠서로 짜여진 공포 형식)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석재의 가공과 목재의 치목이 정교하며 화려한 단청이 돋보인다. 또한 지붕에는 취두(지붕마루의 양 끝에 얹는 새머리 모양을 새긴 장식 기와. 국가·사회적으로 격식이 높은 건물에 쓰인다)·용두·이수 등 고급의 장식물을 올려 전체적으로 매우 화려하고 고급스럽게 지어진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절 아래에는 사찰의 내력을 적은 사적비<寺跡碑> 2기가 있는데 이 중 하나는 숙종<肅宗> 15년(1689)에 조성된 것이다. 종각에는 숙종 27년에 만들어진 동종<銅鐘>이 있는데, 여기에 새겨진 글에 의하면 당시에는 청계산을 청룡산<靑龍山>이라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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