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여주군 여주읍 교1리 261-1
향교는 서당에서 공부한 15세 이상의 양반 자제를 교육하던 시설이다.
여주향교는 원래 상리의 마암< 馬巖 > 근처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숙종< 肅宗 > 11년(1685) 홍문리의 잣나무 고개 부근에 재건되었다. 그러나 마을 주민이 희생되고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고 하여 현 위치에 이건되었다. 최근에는 1976년과 1980년, 1986년에 중수되었다.
여주향교는 마을 뒤쪽 능산 기슭의 경사지에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는데 대지의 아래쪽 터에는 명륜당< 明倫堂 >과 교직사가 있고 윗쪽 터에는 대성전< 大成殿 >과 동 ·서무< 東 ·西무 >가 위치하여 전학후묘< 前學後廟 >의 배치 형식을 갖추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 翼工系 > 맞배집인데 내부 앞쪽의 기둥열로 미루어 전면에 개방된 퇴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붕 가구는 칠량< 七樑 >으로 규모에 비하여 복잡하다. 내부에는 공자< 孔子 >와 4성< 聖 >, 송나라와 우리나라 20현< 賢 >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동 ·서무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익공계 맞배집인데 대성전의 옆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익공의 형태와 가구 수법으로 미루어 대성전과 함께 18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민도리집인데 평면은 凹자형으로 중앙의 4칸 대청 좌우에 3칸 온돌방이 있다. 여주향교는 강학 공간이 명륜당만으로 축소되어 규모가 크지 않으나 건물들은 부재의 형태나 결구법에서 지역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향교는 서당에서 공부한 15세 이상의 양반 자제를 교육하던 시설이다.
여주향교는 원래 상리의 마암< 馬巖 > 근처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숙종< 肅宗 > 11년(1685) 홍문리의 잣나무 고개 부근에 재건되었다. 그러나 마을 주민이 희생되고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고 하여 현 위치에 이건되었다. 최근에는 1976년과 1980년, 1986년에 중수되었다.
여주향교는 마을 뒤쪽 능산 기슭의 경사지에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는데 대지의 아래쪽 터에는 명륜당< 明倫堂 >과 교직사가 있고 윗쪽 터에는 대성전< 大成殿 >과 동 ·서무< 東 ·西무 >가 위치하여 전학후묘< 前學後廟 >의 배치 형식을 갖추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 翼工系 > 맞배집인데 내부 앞쪽의 기둥열로 미루어 전면에 개방된 퇴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붕 가구는 칠량< 七樑 >으로 규모에 비하여 복잡하다. 내부에는 공자< 孔子 >와 4성< 聖 >, 송나라와 우리나라 20현< 賢 >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동 ·서무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익공계 맞배집인데 대성전의 옆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익공의 형태와 가구 수법으로 미루어 대성전과 함께 18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민도리집인데 평면은 凹자형으로 중앙의 4칸 대청 좌우에 3칸 온돌방이 있다. 여주향교는 강학 공간이 명륜당만으로 축소되어 규모가 크지 않으나 건물들은 부재의 형태나 결구법에서 지역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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