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시 권선구 교동 43
수원향교<水原鄕校>는 조선<朝鮮> 정조<正祖> 당시(1795년경)에 수원성곽<水原城郭>을 축성하면서 화성군<華城郡> 봉담면<峰潭面> 와우리<臥牛里>에 있던 것으로 이전<移轉> 중창<重創>한 것이다. 향교 건축으로서 규모와 형식이 완전히 갖추어졌을 뿐 아니라 건물의 질도 우수하여 좋은 연구자료가 된다. 배치는 향교의 가장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으로서 앞에 명륜당<明倫堂>을, 뒤에 대성전<大成殿>을 배치했다. 전면의 외삼문<外三門>에서부터 맨 뒤의 대성전쪽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지형에 장대석으로 석축<石築>을 하여 층이 지도록 함으로써 공간의 위계<位階>를 점증시켰다. 문묘<文廟> 공간에는 대성전 좌우에 서무<西무>와 동무<東무>를 배치하여 공자<孔子> 맹자<孟子> 등 중국<中國> 현철<賢哲>뿐 아니라 우리나라 현철의 위패<位牌>까지 봉안하고 있다. 대성전은 익공계<翼工系> 건물로서 지붕에 부연을 단 겹처마 박공지붕집이고 1고주7량<一高柱七樑>의 구조이다. 전퇴를 앞으로 개방했으며 5칸 정면 전체에 분합문<分閤門>을 달고 그 위에 붙박이 교창<交窓>을 내어 내부에 채광이 되게 했다. 동·서무<東·西무>는 크고 육중한 느낌의 대성전에 비해 아담하고 소박한 느낌이 드는 홑처마의 굴도리집이다. 합각<合閣>지붕집인 명륜당<明倫堂>은 후대에 많은 개조와 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내·외삼문<內·外三門>은 솟을대문 형식이다.
수원향교<水原鄕校>는 조선<朝鮮> 정조<正祖> 당시(1795년경)에 수원성곽<水原城郭>을 축성하면서 화성군<華城郡> 봉담면<峰潭面> 와우리<臥牛里>에 있던 것으로 이전<移轉> 중창<重創>한 것이다. 향교 건축으로서 규모와 형식이 완전히 갖추어졌을 뿐 아니라 건물의 질도 우수하여 좋은 연구자료가 된다. 배치는 향교의 가장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으로서 앞에 명륜당<明倫堂>을, 뒤에 대성전<大成殿>을 배치했다. 전면의 외삼문<外三門>에서부터 맨 뒤의 대성전쪽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지형에 장대석으로 석축<石築>을 하여 층이 지도록 함으로써 공간의 위계<位階>를 점증시켰다. 문묘<文廟> 공간에는 대성전 좌우에 서무<西무>와 동무<東무>를 배치하여 공자<孔子> 맹자<孟子> 등 중국<中國> 현철<賢哲>뿐 아니라 우리나라 현철의 위패<位牌>까지 봉안하고 있다. 대성전은 익공계<翼工系> 건물로서 지붕에 부연을 단 겹처마 박공지붕집이고 1고주7량<一高柱七樑>의 구조이다. 전퇴를 앞으로 개방했으며 5칸 정면 전체에 분합문<分閤門>을 달고 그 위에 붙박이 교창<交窓>을 내어 내부에 채광이 되게 했다. 동·서무<東·西무>는 크고 육중한 느낌의 대성전에 비해 아담하고 소박한 느낌이 드는 홑처마의 굴도리집이다. 합각<合閣>지붕집인 명륜당<明倫堂>은 후대에 많은 개조와 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내·외삼문<內·外三門>은 솟을대문 형식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