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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경덕왕릉 - 외형상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서 지름 약 22m, 높이 약 6m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 8

경주 시가지에서 서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구릉의 중복<中腹>에 위치하고 있다. 외형상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서 지름 약 22m, 높이 약 6m이며, 능 하부에는 판석조 호석<板石造 護石>이 돌려졌다. 호석<護石>은 목조건축물의 석조기단<石造基壇>과 같은 형태로, 가장 아래에 지대석<地臺石>이 있고, 그 위에 높이 89㎝, 너비 120㎝의 면석<面石>이 놓였다. 면석 사이에는 뿌리가 고분 안으로 길게 뻗어 면석과 봉분을 지탱하기 위한 탱석<撑石>을 배치하였는데, 탱석의 앞면은 면석보다 약간 앞으로 나와 있다. 탱석<撑石>에는 두 칸을 건너서 하나씩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조각되어 있다. 면석<面石>과 탱석<撑石> 위에는 갑석<甲石>이 놓여 있다. 호석<護石>에서 1.3m 밖으로 높이 175㎝의 석주<石柱> 40여개를 세워 돌난간을 둘렀는데, 지금 석주는 거의 다 남아 있으나 기둥 사이에 끼웠던 난간의 돌살대는 거의 없어졌다. 호석과 난간석주 사이 바닥에는 길이 110㎝, 너비 약 45㎝의 부채꼴 판석<板石>을 정연하게 깔았다. 능 앞에는 안상문<眼象紋>이 새겨진 높은 석상<石床>이 놓여 있으나, 통일신라시대 왕릉에서 볼 수 있는 석사<石獅>·문인석<文人石>·무인석<武人石>과 같은 석조물은 보이지 않는다. 신라 제35대 경덕왕<景德王>(재위<在位> 742∼765)은 성덕왕<聖德王>의 아들이며 이름은 헌영<憲英>이다. 경덕왕<景德王> 때는 신라 중대왕실<新羅 中代王室>의 전제왕권<專制王權>이 쇠퇴되기 시작하는 시기로 행정구역 개편<行政區域 改編>, 직제개편<職制改編> 등을 단행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765년 6월에 왕이 죽자 시호를 경덕<景德>이라 하고, 모지사<毛祗寺> 서쪽 봉우리에 장사지냈다고 전한다. 한편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처음 경지사<頃只寺> 서쪽 언덕에 장사지냈다가 뒤에 양장곡<楊長谷> 가운데로 이장하였다고 전한다. 현재 전하는 경덕왕릉의 위치와 문헌기록의 일치여부는 알 수 없고, 또한 호석<護石>의 세부수법이나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의 조각수법을 신라 하대<新羅 下代>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이 능이 경덕왕<景德王>의 능인가를 의문시하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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