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진현동 15 불국사
불국사< 佛國寺 > 앞면 대석단< 大石壇 > 동쪽의 청운교< 靑雲橋 >·백운교< 白雲橋 >에 대하여 서쪽에 연화교< 蓮華橋 >·칠보교< 七寶橋 >가 있다. 가구수법< 架構手法 >은 동쪽의 청운교·백운교와 대동소이하며, 전체의 높이가 청운교의 높이와 같은 소규모의 것이다. 밑의 연화교는 10단의 층계를 만들었는데, 계단식 등항< 登桁 >에 만들어 둘로 나누었고, 양쪽 끝의 등항< 登桁 >에는 난간을 설치하였던 흔적이 있으나 지금은 아래위에 돌기둥만 서 있다. 다리밑은 호형< 弧形 >으로 가공한 돌로 궁륭형< 穹융形 > 통로를 만들어 놓은 점이 동쪽의 백운교와 같으나, 이 석제< 石梯 >에서 특이한 것은 층계마다 아름다운 연판< 蓮瓣 >이 양각되어 있는 점이다. 칠보교는 8단의 보계< 寶階 >로 되어 있는데, 한 장의 긴 돌로 된 등항< 登桁 >으로 양분된 점이 연화교와 다르다. 돌기둥이 아래위에 남아 있어 석란< 石欄 > 설치의 흔적을 남겨 놓은 점은 같은 형식이다. 다만 규모가 작아졌기 때문에 다리밑에 통로를 만들지 않았으며, 보계< 寶階 >에 특별한 조각장식은 없다. 칠보교를 올라서면 안양문< 安養門 >을 지나 극락전< 極樂殿 >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 석제< 石梯 > 또한 약 45도의 안정된 경사를 보이며, 동쪽 석제< 石梯 >의 웅장함에 비하여 아름답고 섬세한 맛이 있어 조화와 변화를 주고 있다. 이 석제< 石梯 >도 동쪽 석제< 석제 >와 마찬가지로 경덕왕< 景德王 > 때 김대성< 金大城 >이 중창< 重創 >했을 때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74년 중수할 때에 돌간대를 다시 끼워 옛모습을 재현시켰다.
불국사< 佛國寺 > 앞면 대석단< 大石壇 > 동쪽의 청운교< 靑雲橋 >·백운교< 白雲橋 >에 대하여 서쪽에 연화교< 蓮華橋 >·칠보교< 七寶橋 >가 있다. 가구수법< 架構手法 >은 동쪽의 청운교·백운교와 대동소이하며, 전체의 높이가 청운교의 높이와 같은 소규모의 것이다. 밑의 연화교는 10단의 층계를 만들었는데, 계단식 등항< 登桁 >에 만들어 둘로 나누었고, 양쪽 끝의 등항< 登桁 >에는 난간을 설치하였던 흔적이 있으나 지금은 아래위에 돌기둥만 서 있다. 다리밑은 호형< 弧形 >으로 가공한 돌로 궁륭형< 穹융形 > 통로를 만들어 놓은 점이 동쪽의 백운교와 같으나, 이 석제< 石梯 >에서 특이한 것은 층계마다 아름다운 연판< 蓮瓣 >이 양각되어 있는 점이다. 칠보교는 8단의 보계< 寶階 >로 되어 있는데, 한 장의 긴 돌로 된 등항< 登桁 >으로 양분된 점이 연화교와 다르다. 돌기둥이 아래위에 남아 있어 석란< 石欄 > 설치의 흔적을 남겨 놓은 점은 같은 형식이다. 다만 규모가 작아졌기 때문에 다리밑에 통로를 만들지 않았으며, 보계< 寶階 >에 특별한 조각장식은 없다. 칠보교를 올라서면 안양문< 安養門 >을 지나 극락전< 極樂殿 >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 석제< 石梯 > 또한 약 45도의 안정된 경사를 보이며, 동쪽 석제< 石梯 >의 웅장함에 비하여 아름답고 섬세한 맛이 있어 조화와 변화를 주고 있다. 이 석제< 石梯 >도 동쪽 석제< 석제 >와 마찬가지로 경덕왕< 景德王 > 때 김대성< 金大城 >이 중창< 重創 >했을 때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74년 중수할 때에 돌간대를 다시 끼워 옛모습을 재현시켰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