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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무열왕릉 - 신라고분 중에서 피장자(被葬者)가 확실한 능묘 중의 하나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경주시 서악동 842

무열왕릉<武烈王陵>은 경주 시가지 서쪽의 선도산<仙挑山>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구릉의 끝부분에 종렬<縱列>한 5기<基> 대형분<大形墳> 가운데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다. 원형<圓形>의 봉토분<封土墳>으로 주위 둘레 110m에 높이가 11m이며, 매장주체<埋葬主體>는 횡혈식석실<橫穴式石室>일것으로 추정된다. 분구의 언저리에는 호석<護石>을 받치는 자연석 받침돌들이 나와 있다. 전방 동북쪽에는 국보 제25호로 지정된 능비<陵碑>가 있는데 현재는 비신<碑身>을 잃고, 귀부<龜趺>와 이수<이首>만 남아 있다. 귀부<龜趺>는 장방형의 대석<臺石> 위에 거북 모양이 올려진 것으로, 네 발과 머리의 표현은 사실적<寫實的>이며, 등의 전면에는 귀갑문<龜甲文>을 시문하고 그 주위엔 비운문<飛雲文>을 돌렸다. 이수<이首>는 좌우에 삼룡식 육룡<三龍式 六龍>을 표현하고 여의주<如意珠>를 다투는 형상으로 조각하였다. 이수 전면<이首 前面> 중앙에는 전서<篆書>로서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 양각되어 있는데《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속<續>에 의하면 김인문<金仁問>이 비문<碑文>을 지었다고 한다. 이 능은 신라고분<新羅古墳> 중에서 피장자<被葬者>가 확실한 능묘<陵墓> 중의 하나이다. 이 왕릉<王陵>의 주인공인 신라 제29대 무열왕<武烈王>(재위<在位> 654∼661)은 본명이 김춘추<金春秋>이고 진지왕<眞智王>의 손자이며 용춘<龍春>의 아들이다. 왕비는 김유신<金庾信>의 동생인 문명부인<文明夫人>이다. 진덕여왕<眞德女王>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최초의 진골<眞骨> 출신 왕으로서 당<唐>과 연합하여 백제<百濟>를 정복하고 삼국통일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왕위에 오른지 8년만인 서기 660년 6월에 왕이 죽으니 시호<諡號>를 태종무열<太宗武烈>이라 하고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전하는데 영경사 자리가 어딘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능 동쪽에 삼층석탑<三層石塔>이 있어 이곳을 영경사지<永敬寺址>로 비정하기도 하지만 ≪삼국사기<三國史記>≫기록의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수<이首>의 비문<碑文>을 고려할 때 그 후방의 묘가 무열왕릉<武烈王陵>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현재 능역<陵域>에 담을 돌려 쌓고 능 주위에 보도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1972∼1973년의 공사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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