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서악동 615
이 서원< 書院 >은 조선< 朝鮮 > 명종< 明宗 > 때 사람인 이정< 李楨 >(1512∼1571) 선생이 경주부윤< 慶州府尹 >으로 있으면서 김유신< 金庾信 > 장군< 將軍 >을 후세< 後世 >에 길이 새기고자 하는 뜻에서 장군의 위패< 位牌 >를 모시기 위해 명종 18년(1563)에 세운 사당< 祠堂 >이다. 그런데 당시 경주 지역의 선비들이 신라10현< 新羅十賢 >으로 받들고 있는 사람중에 설총< 薛聰 >과 최치원< 崔致遠 >의 위패도 함께 모실 것을 건의하므로 이정은 퇴계< 退溪 > 이황< 李滉 > 선생과 의논하여 이분들의 위패도 함께 모시게 되었다. 퇴계 선생이 서악정사< 西岳精舍 >라 이름짓고 손수 글씨를 써 현판< 懸板 >을 달았다고 한다. 임진왜란< 壬辰倭亂 >으로 서원이 모두 불타 버렸는데 그후 인조< 仁祖 >(1623∼1649)때 모두 재건< 再建 >되어 나라로부터 서악서원< 西岳書院 >이란 이름을 받게 되었다. 현재의 서악서원이라고 현판에 쓰인 글씨는 당시의 명필< 名筆 >로 알려진 원진해< 元振海 >가 쓴 것이다.
이 서원< 書院 >은 조선< 朝鮮 > 명종< 明宗 > 때 사람인 이정< 李楨 >(1512∼1571) 선생이 경주부윤< 慶州府尹 >으로 있으면서 김유신< 金庾信 > 장군< 將軍 >을 후세< 後世 >에 길이 새기고자 하는 뜻에서 장군의 위패< 位牌 >를 모시기 위해 명종 18년(1563)에 세운 사당< 祠堂 >이다. 그런데 당시 경주 지역의 선비들이 신라10현< 新羅十賢 >으로 받들고 있는 사람중에 설총< 薛聰 >과 최치원< 崔致遠 >의 위패도 함께 모실 것을 건의하므로 이정은 퇴계< 退溪 > 이황< 李滉 > 선생과 의논하여 이분들의 위패도 함께 모시게 되었다. 퇴계 선생이 서악정사< 西岳精舍 >라 이름짓고 손수 글씨를 써 현판< 懸板 >을 달았다고 한다. 임진왜란< 壬辰倭亂 >으로 서원이 모두 불타 버렸는데 그후 인조< 仁祖 >(1623∼1649)때 모두 재건< 再建 >되어 나라로부터 서악서원< 西岳書院 >이란 이름을 받게 되었다. 현재의 서악서원이라고 현판에 쓰인 글씨는 당시의 명필< 名筆 >로 알려진 원진해< 元振海 >가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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