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서구 화정동 781-23
화담사는 하동정씨<河東鄭氏>인 묵은공 정희<默隱公鄭熙>와 그의 아들 문경공 정초<文景公鄭招>, 손자 문절공 정수충<文節公鄭守忠>과 약포공 정오도<藥圃公鄭吾道>, 여흥민씨<驪興閔氏>인 충장공 민제장<忠壯公閔濟章>을 모신 사우이다. 화담사는 1735년 경사<經史>에 능하며 예법을 지키고 청렴결백한 문절공의 영정을 모시는 영당<影堂>에서 출발하였다. 그후 1776년 사우건축을 발의하여 1784년 문절공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1796년에 광주향교 유소<儒所>의 발의로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광주출신의 충장공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1809년에는 충청도 유회소<儒會所>의 발의를 받아들어 정몽주의 제자로 충절을 지킨 묵은공과 세종대에 학문, 예술, 과학기술 등에 업적을 쌓았으며 청백과 도덕이 놓았던 문경공을 배향하여 예를 갖추어 1910년 묵은공을 주벽<主壁>으로 하였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훼조치 때에도 지붕을 덮고 제사만 폐하였다가 1905년 광주 향교유회소의 발의로 복설되었다. 1906년에는 광주유생들의 발의로 충효가 출중한 광주출신의 약포공을 추가로 배향하여 현재의 틀을 갖추었다. 화담사는 정면 세칸, 측면 한칸으로 앞뒤에 마루가 있는 맛배지붕의 집이다. 앞면의 마루는 개방되어 제향의식 때에 편리하게 한 사당건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앞부분의 문은 굽널을 둔 빗살문이다. 청지재<聽之齋>와 열호재<悅乎齋>는 동재와 서재로 같은 양식으로 건립된 정면 네칸, 측면 한칸의 건물이다. 평면구성은 앞에 마루를 두고 모두 온돌방을 놓았다,
화담사는 하동정씨<河東鄭氏>인 묵은공 정희<默隱公鄭熙>와 그의 아들 문경공 정초<文景公鄭招>, 손자 문절공 정수충<文節公鄭守忠>과 약포공 정오도<藥圃公鄭吾道>, 여흥민씨<驪興閔氏>인 충장공 민제장<忠壯公閔濟章>을 모신 사우이다. 화담사는 1735년 경사<經史>에 능하며 예법을 지키고 청렴결백한 문절공의 영정을 모시는 영당<影堂>에서 출발하였다. 그후 1776년 사우건축을 발의하여 1784년 문절공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1796년에 광주향교 유소<儒所>의 발의로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광주출신의 충장공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1809년에는 충청도 유회소<儒會所>의 발의를 받아들어 정몽주의 제자로 충절을 지킨 묵은공과 세종대에 학문, 예술, 과학기술 등에 업적을 쌓았으며 청백과 도덕이 놓았던 문경공을 배향하여 예를 갖추어 1910년 묵은공을 주벽<主壁>으로 하였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훼조치 때에도 지붕을 덮고 제사만 폐하였다가 1905년 광주 향교유회소의 발의로 복설되었다. 1906년에는 광주유생들의 발의로 충효가 출중한 광주출신의 약포공을 추가로 배향하여 현재의 틀을 갖추었다. 화담사는 정면 세칸, 측면 한칸으로 앞뒤에 마루가 있는 맛배지붕의 집이다. 앞면의 마루는 개방되어 제향의식 때에 편리하게 한 사당건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앞부분의 문은 굽널을 둔 빗살문이다. 청지재<聽之齋>와 열호재<悅乎齋>는 동재와 서재로 같은 양식으로 건립된 정면 네칸, 측면 한칸의 건물이다. 평면구성은 앞에 마루를 두고 모두 온돌방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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