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광산구 박호동 131-1
이것은 임진왜란< 壬辰倭亂 >(1592) 때 진주성< 晋州城 > 전투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충민공< 忠愍公 > 양산숙< 梁山璹 > 일가< 一家 > 7일의 충< 忠 >·효< 孝 >·열< 烈 >·행< 行 >을 기리기 위하여 인조< 仁祖 > 13년(1635)에 건립한 정려< 旌閭 >이다. 이곳에 모신 분은 충신< 忠臣 > 양산숙< 梁山璹 > 외에 효자< 孝子 >·열녀< 烈女 >·절부< 節婦 > 각 두명씩이다. 양산숙< 梁山璹 >:건재< 健齋 > 김천일< 金千鎰 >과 함께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양산룡< 梁山龍 >:양산숙의 형< 兄 >으로 군량미< 軍糧米 >를 모아 의병을 돕고 정유재란< 丁酉再亂 > 때 피란하다가 삼양포< 三洋浦 >에서 왜적을 만나 어머니 죽산박씨< 竹山朴氏 >와 함께 바다에 투신, 순절하였다. 양산수< 梁山岫 >:삼양포< 三洋浦 >에서 형< 兄 > 산룡과 더불어 어머니를 구하려다 같이 순절하였다. 제주양씨< 濟州梁氏 >:양산룡의 딸로 나주< 羅州 > 회진< 會津 >에서 왜적에게 붙잡혀 압송중 영산강< 榮山江 >에 투신, 순절하였다. 죽산박씨< 竹山朴氏 >:부제학< 副提學 > 양응정< 梁應鼎 >의 처이자 양산숙< 梁山璹 >의 어머니로 삼양포< 三洋浦 >에서 아들딸들과 함께 순절하였다. 광산이씨< 光山李氏 >:양산숙< 梁山璹 >의 처로 정유재란< 丁酉再亂 > 때 무안< 務安 > 승달산< 僧達山 >에서 왜적을 만나 항거하다가 자결하였다.
이것은 임진왜란< 壬辰倭亂 >(1592) 때 진주성< 晋州城 > 전투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충민공< 忠愍公 > 양산숙< 梁山璹 > 일가< 一家 > 7일의 충< 忠 >·효< 孝 >·열< 烈 >·행< 行 >을 기리기 위하여 인조< 仁祖 > 13년(1635)에 건립한 정려< 旌閭 >이다. 이곳에 모신 분은 충신< 忠臣 > 양산숙< 梁山璹 > 외에 효자< 孝子 >·열녀< 烈女 >·절부< 節婦 > 각 두명씩이다. 양산숙< 梁山璹 >:건재< 健齋 > 김천일< 金千鎰 >과 함께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양산룡< 梁山龍 >:양산숙의 형< 兄 >으로 군량미< 軍糧米 >를 모아 의병을 돕고 정유재란< 丁酉再亂 > 때 피란하다가 삼양포< 三洋浦 >에서 왜적을 만나 어머니 죽산박씨< 竹山朴氏 >와 함께 바다에 투신, 순절하였다. 양산수< 梁山岫 >:삼양포< 三洋浦 >에서 형< 兄 > 산룡과 더불어 어머니를 구하려다 같이 순절하였다. 제주양씨< 濟州梁氏 >:양산룡의 딸로 나주< 羅州 > 회진< 會津 >에서 왜적에게 붙잡혀 압송중 영산강< 榮山江 >에 투신, 순절하였다. 죽산박씨< 竹山朴氏 >:부제학< 副提學 > 양응정< 梁應鼎 >의 처이자 양산숙< 梁山璹 >의 어머니로 삼양포< 三洋浦 >에서 아들딸들과 함께 순절하였다. 광산이씨< 光山李氏 >:양산숙< 梁山璹 >의 처로 정유재란< 丁酉再亂 > 때 무안< 務安 > 승달산< 僧達山 >에서 왜적을 만나 항거하다가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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