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광산구 광산동 452
이곳은 조선< 朝鮮 > 중기< 中期 >의 성리학자< 性理學者 > 고봉< 高峰 > 기대승< 奇大升 > 선생< 先生 >을 배향하고 있는 사우< 祠宇 >이다. 선생은 임곡< 林谷 > 신용리< 新龍里 >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고금< 古今 >에 통달하고 학문이 높았으며, 관계에 나가 대소 관직< 官職 >을 거쳐 대사간< 大司諫 >까지 역임하였다. 특히 스승인 퇴계< 退溪 > 이황< 李滉 >과 사칠이기론< 四七理氣論 >을 주제로 한 8년간에 걸친 편지 왕복 논쟁은 유명하다. 빙월당< 氷月堂 >(강당< 講堂 >)은 선생의 장자< 長子 >인 기효증< 奇孝曾 >이 선생의 위업< 偉業 >을 추모하기 위하여 선조< 宣祖 > 40년(1607)에 지었는데 1938년 후손과 유림이 개수하면서 현 위치로 옮겼다. 정조< 正祖 >가 선생은 "빙심설월< 氷心雪月 >" 같다 하여 빙월당< 氷月堂 >이라 사액< 賜額 >하였다. 1979년 장판각< 藏板閣 >과 외삼문< 外三門 > 그리고 1980년에 사당< 祠堂 >을, 1981년에 내삼문< 內三門 >을 각각 지었다. 선생의 유집< 遺集 >인 『고봉문집< 高峰文集 >』 15권과 판각< 板刻 >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은 조선< 朝鮮 > 중기< 中期 >의 성리학자< 性理學者 > 고봉< 高峰 > 기대승< 奇大升 > 선생< 先生 >을 배향하고 있는 사우< 祠宇 >이다. 선생은 임곡< 林谷 > 신용리< 新龍里 >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고금< 古今 >에 통달하고 학문이 높았으며, 관계에 나가 대소 관직< 官職 >을 거쳐 대사간< 大司諫 >까지 역임하였다. 특히 스승인 퇴계< 退溪 > 이황< 李滉 >과 사칠이기론< 四七理氣論 >을 주제로 한 8년간에 걸친 편지 왕복 논쟁은 유명하다. 빙월당< 氷月堂 >(강당< 講堂 >)은 선생의 장자< 長子 >인 기효증< 奇孝曾 >이 선생의 위업< 偉業 >을 추모하기 위하여 선조< 宣祖 > 40년(1607)에 지었는데 1938년 후손과 유림이 개수하면서 현 위치로 옮겼다. 정조< 正祖 >가 선생은 "빙심설월< 氷心雪月 >" 같다 하여 빙월당< 氷月堂 >이라 사액< 賜額 >하였다. 1979년 장판각< 藏板閣 >과 외삼문< 外三門 > 그리고 1980년에 사당< 祠堂 >을, 1981년에 내삼문< 內三門 >을 각각 지었다. 선생의 유집< 遺集 >인 『고봉문집< 高峰文集 >』 15권과 판각< 板刻 >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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