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상의장군예장석묘 - 구성도호부사 전상의 장군을 모신 사당

by 넥스루비 2007. 8. 7.
광주 북구 화암동 산239


이곳은 정묘호란< 丁卯胡亂 > 때 청< 淸 >나라 침략군을 맞아 안주성< 安州城 > 싸움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장렬히 순국한 구성도호부사< 龜城都護府使 > 전상의< 全尙毅 >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장군은 조선< 朝鮮 > 선조< 宣祖 > 8년(1575)에 지금의 광주광역시< 光州廣域市 > 서구< 西區 > 구동< 龜洞 >에서 전용< 全蓉 >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용력과 무술이 남달리 뛰어나 선조 36년(1603) 29세 때 무과< 武科 >에 급제하여 선전관< 宣傳官 >을 첫 벼슬로 내외 관직을 역임하였다. 광해군< 光海君 > 9년(1617) 오윤겸< 吳允謙 >과 함께 회답사< 回答使 >로 일본< 日本 >에 건너가 임진왜란< 壬辰倭亂 > 때 끌려간 동포 150여 명을 귀국시키는 데 공을 세우고, 내금위< 內禁衛 > 예차< 豫差 > 및 어모장군< 御侮將軍 >을 봉직하였다. 인조< 仁祖 > 3년(1625) 구성도호부사< 龜城都護府使 > 겸 좌영장< 左營將 >이 되어 흐트러진 관위를 정비하고 변방방어에 극력 대비하였다. 인조 5년(1627) 1월 청의 3만 대군이 쳐들어와 의주< 義州 >를 점령하고 물밀듯이 남으로 안주< 安州 >, 평양< 平壤 >을 거쳐 황주< 黃州 >에 이르렀다. 이때 장군은 안주성< 安州城 > 싸움 중 남영< 南營 >인 백상루< 百祥樓 >에서 5일간 분전하다가 53세를 일기로 장렬히 순절< 殉節 >하니 적장< 敵將 >들도 충신< 忠臣 >의 죽음을 애통해하였다 한다. 난이 끝난 후 2월 7일 자헌대부< 資憲大夫 > 병조판서< 兵曹判書 > 겸 지의금부사< 知義禁府事 >에 추증< 追贈 >되고, 이어서 안주로부터 그의 출생지인 광주로 시신< 屍身 >을 옮기어 동년< 同年 > 7월 26일 이곳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평두산< 平頭山 >에 예장< 禮葬 >하였다. 숙종< 肅宗 > 8년(1682) 장군의 충절< 忠節 >을 기리기 위하여 전몰지< 戰歿地 >인 안주의 충민사< 忠愍祠 >에 받들게 하고, 동< 同 > 10년(1684)에는 충신정려< 忠臣旌閭 >를 명하였다. 헌종< 憲宗 > 15년(1849) 광주의 경렬사< 景烈祠 >와 제주< 濟州 >의 귤림서원< 橘林書院 >에도 배향< 配享 >되었었으나 고종< 高宗 > 5년(1868) 서원철폐령< 書院撤廢令 >에 의하여 헐리게 되었다. 본 사당< 祠堂 > 건물은 유적정화사업으로 1982년 6월 28일에 착공하여 1985년에 완공하였다.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