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598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 불광산(佛光山) 장안읍 장안리에 장안사(長安寺)가 자리하고 있다. 기장 읍지의 불우(佛宇) 편에는 '장안사는 불광산에 있고 남쪽에 삼각산이 있고 현에서 북녘 40리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기장현에 예부터 있는 4대 사찰 중 하나로 고찰이다.
장안사는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원효대사가 척판암과 더불어 창건하여 쌍계사(雙溪寺)라 하였으며, 신라 40대 애장왕이 다녀간 뒤로 장안사(長安寺)라 고쳐 불렀다 한다. 이후 고려시대의 역사는 분명하지 않으며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인조 16년(1638) 태의대사가 중건, 효종 5년(1654)에는 원종(元宗), 학능(學能), 충묵(沖默) 세 선사가 대웅전을, 1948년 각현(覺玄)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명부전을, 왼쪽에 응진전을, 뒷편에 산신각을 배치하고 선실(禪室)과 요사체, 부목방(負木房) 등이 질서있게 배열되어 있다. 대웅전 건물은 정면 3칸, 측면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에 다포계 형식으로 1975년에 단청을 다시 하였다. 대웅전 중앙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아미타여래 (阿彌陀如來), 왼쪽에 약사여래(藥師如來)의 삼신불(三身佛)이 봉안되어 있다. 이 건물은 높이가 비교적 높고 부재가 견실하여 사찰의 중심 건물로서의 웅장한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절의 오른쪽 골짜기엔 지금은 지주사찰이 되어버린 척판암(擲板庵)이 있다. 척판암은 원효대사가 당나라의 담운사(淡雲寺) 절이 무너져 천여애중이 깔려 죽게 된 것을 신통력으로 알고 널판쪽을 중국에 날려 보내어 대중을 구했다는 고사가 얽혀있는 암자이기도 하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법당 앞 정원에 마주 심어진 단풍나무인데 키는 2.5m 정도이나 뿌리부분의 둘레가 80m나 되고 가지들이 무수히 많다. 이 나무는 오랜 세월 정성들여 분재한 뒤에 이식한 것이라 한다. 가을에 오면 불꽃보다 더 붉은 단풍을 볼 수 있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 불광산(佛光山) 장안읍 장안리에 장안사(長安寺)가 자리하고 있다. 기장 읍지의 불우(佛宇) 편에는 '장안사는 불광산에 있고 남쪽에 삼각산이 있고 현에서 북녘 40리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기장현에 예부터 있는 4대 사찰 중 하나로 고찰이다.
장안사는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원효대사가 척판암과 더불어 창건하여 쌍계사(雙溪寺)라 하였으며, 신라 40대 애장왕이 다녀간 뒤로 장안사(長安寺)라 고쳐 불렀다 한다. 이후 고려시대의 역사는 분명하지 않으며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인조 16년(1638) 태의대사가 중건, 효종 5년(1654)에는 원종(元宗), 학능(學能), 충묵(沖默) 세 선사가 대웅전을, 1948년 각현(覺玄)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명부전을, 왼쪽에 응진전을, 뒷편에 산신각을 배치하고 선실(禪室)과 요사체, 부목방(負木房) 등이 질서있게 배열되어 있다. 대웅전 건물은 정면 3칸, 측면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에 다포계 형식으로 1975년에 단청을 다시 하였다. 대웅전 중앙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아미타여래 (阿彌陀如來), 왼쪽에 약사여래(藥師如來)의 삼신불(三身佛)이 봉안되어 있다. 이 건물은 높이가 비교적 높고 부재가 견실하여 사찰의 중심 건물로서의 웅장한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절의 오른쪽 골짜기엔 지금은 지주사찰이 되어버린 척판암(擲板庵)이 있다. 척판암은 원효대사가 당나라의 담운사(淡雲寺) 절이 무너져 천여애중이 깔려 죽게 된 것을 신통력으로 알고 널판쪽을 중국에 날려 보내어 대중을 구했다는 고사가 얽혀있는 암자이기도 하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법당 앞 정원에 마주 심어진 단풍나무인데 키는 2.5m 정도이나 뿌리부분의 둘레가 80m나 되고 가지들이 무수히 많다. 이 나무는 오랜 세월 정성들여 분재한 뒤에 이식한 것이라 한다. 가을에 오면 불꽃보다 더 붉은 단풍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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