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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강씨(晋陽姜氏)칠정려각(七旌閭閣 - 충효사상의 근본을 보여주는 진양강씨(晋陽姜氏)칠정려각(七旌閭)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남 의령군 의령읍 동동리 1134-3

의령군 의령읍(宜寧邑) 동동 1134의 3번지, 지금의 의령종합고등학교 동편 담장옆 도로변에는 진양강씨(晉陽姜氏) 일문의 칠정려각(七旌閭閣) 6동(棟)이 가지런히 서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朝鮮時代) 진양강씨(晉陽姜氏) 문중이 낳은 일곱분의 충(忠) 효(孝) 열(烈) 삼강(三綱)을 기리기 위한 정려각(旌閭閣)이니 일명 삼강문(三綱門)으로 도 불리워 왔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충절(忠節)과 효열(孝烈)을 일러 삼강(三綱)이라 하고 나라에서는 이를 실천한 사람을 정려(旌閭)하여 후세의 영원한 귀감으로 삼고자 하였으니, 진양강씨(晉陽姜氏) 일문의 칠정려(七旌閭)는 우리고장 의령의 영원한 귀감이요 자랑이다. 이 정려각(旌閭閣)은 오랜 풍우에 더러는 허물어지고 파손되었으나 문중에서 틈틈히 중수(重修)하여 오늘에 이르고 1972년에는 새로 내부수리를 말끔히 하여 보존하여 온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정려(旌閭)는 1495년(燕山君 1년)에 태여나 천출(天出)의 효도로 정려된 모암공(慕菴公) 강우(姜瑀)의 정려이니 1744년(英祖20년)에 건립된 맛배 목조와가 이다. 그의 자(字)는 백규(伯圭), 호(號)는 모암(慕菴)이니 충순위(忠順衛) 세응(世應)의 아들이다. 어머니 전주이씨(全州李氏)는 태종(太宗)의 손(孫) 의천군(義泉君)의 따님이다. 19세때 사마시(司馬試)에 올랐으며 특히 경사(經史)에 밝아서 사방에 이름을 떨쳤다. 그는 또 천성이 효도하여 모친의 병환에 지성으로 간병하고 당상에 몹시 애통하여 신병을 얻으니 시묘(侍墓) 3년을 마치는 대상일(大祥日)에 급기야 본인도 생을 마쳤다. 1744년(英祖20년) 정려(旌閭)를 내리고 1847년(憲宗13년) 충효사(忠孝祠)에 배향(配享)하였다. 충열공(忠烈公) 강수남(姜壽男)은 효행으로 정려(旌閭)된 강서(姜瑞)의 아들이다. 그는 1552년(明宗7년)에 태어나 일찌기 벼슬에 올라 병조정랑(兵曹正郞)으로 있던중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 삭령(朔寧)싸움에서 순절(殉節)한 분이니 그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려(旌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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