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성시 봉산동 392
백동연죽은 잎담배를 피우던 시절의 금속제 담뱃대를 말하며 특히 사치품으로 제작된 백동 제품을 말한다. 우리 나라의 담뱃대는 일본이나 중국에서처럼 순동<純銅>이나 서양의 목재 파이프가 발달하지 않은 대신 일찍부터 놋쇠와 백동같은 동합금 제품이 유달리 애호되어 왔다. 특히 백동의 경우에는 은·동·오동<烏銅>·황동<黃銅>등으로 무늬를 넣은 독특한 기법이 자랑할 만하다. 옛부터 교통 요지로서 각종 수공업이 발달했던 안성은 담뱃대로도 명성이 높아 서울가 기호 이북에서 담뱃대의 주공급원이었다. 기능 보유자인 양인석이 처음 이 일을 시작했던 50여 년 전만 해도 당시 안성읍의 동북 교외에 속하는 연지리·숭인리·가토리·불현리 일대는 온통 담뱃대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담뱃대의 명칭은 약칭으로 '-대', '-죽<竹>'이라 하고 특별한 무늬 없이 만든 것은 '민대', 무늬를 놓은 것은 '별죽<別竹>'이라고 한다. 또 장식한 무늬에 따라 '태극죽'·'송학죽'·'삼동죽' 등으로도 부르며, 생산지의 이름을 붙여 '동래죽'·'안성죽'이라고도 한다. 안성에서는 주로 민대를 생산하는데, 백동죽은 목 부위를 둥글게 하지 않고 6모(은행모·덜미모)를 이루면서 꼬부라지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백동연죽은 잎담배를 피우던 시절의 금속제 담뱃대를 말하며 특히 사치품으로 제작된 백동 제품을 말한다. 우리 나라의 담뱃대는 일본이나 중국에서처럼 순동<純銅>이나 서양의 목재 파이프가 발달하지 않은 대신 일찍부터 놋쇠와 백동같은 동합금 제품이 유달리 애호되어 왔다. 특히 백동의 경우에는 은·동·오동<烏銅>·황동<黃銅>등으로 무늬를 넣은 독특한 기법이 자랑할 만하다. 옛부터 교통 요지로서 각종 수공업이 발달했던 안성은 담뱃대로도 명성이 높아 서울가 기호 이북에서 담뱃대의 주공급원이었다. 기능 보유자인 양인석이 처음 이 일을 시작했던 50여 년 전만 해도 당시 안성읍의 동북 교외에 속하는 연지리·숭인리·가토리·불현리 일대는 온통 담뱃대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담뱃대의 명칭은 약칭으로 '-대', '-죽<竹>'이라 하고 특별한 무늬 없이 만든 것은 '민대', 무늬를 놓은 것은 '별죽<別竹>'이라고 한다. 또 장식한 무늬에 따라 '태극죽'·'송학죽'·'삼동죽' 등으로도 부르며, 생산지의 이름을 붙여 '동래죽'·'안성죽'이라고도 한다. 안성에서는 주로 민대를 생산하는데, 백동죽은 목 부위를 둥글게 하지 않고 6모(은행모·덜미모)를 이루면서 꼬부라지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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