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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익사 - 곽재우 장군의 숨결이 느껴지는 충익사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남 의령군 의령읍 중동리 467-2번지

의령읍에서 의령천을 따라 난 도로를 지나다 보면 의령천 왼쪽 중동 남산 밑에 곽재우 장군과 의병장 17명의 위패를 모신 충익사가 나온다. 충익사는는 임진왜란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켰던 홍의 장군 곽재우와 그 휘하 장병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과 의병의 전적도와 유물을 전시한 기념관, 충의각이 있다. 곽재우 장군은 명종7년(1552)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서 출생 하였는데 문무에 남달리 뛰어났으나 선조18년(1586)부친의 뜻을 받들어 과거에 응시하여 문과에 급제, 정시 2등이 되었으나 수일후에 다시 파방이 되었으니 이는 그때 과거장에서 지은 글이 선조 임금의 뜻에 거슬렀기 때문이며 이때 그의 나이 34세 이후로는 두 번다시 과거에 나가지 아니하고 관직없이 초야에서 지냈다.

선조 25년(1592) 4월 13일 왜병이 침입하여 서울로 진격해 오자 "나라를 지키는 일을 관군에게만 맡길 수 없다"고 분연히 일어나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왜병의 침공을 막았다. 장군은 홍의에 백마를 타고 휘하에 17명의 장수와 수천의 의병을 거느리면서 정암진, 기강, 현풍, 창녕, 화왕산성, 진주성등의 전투에서 실로 신출귀몰하는 전략 전술로 적을 크게 무찌르고 백전백승함으로써 왜병의 전라도 진격을 저지 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후 진주목사를 지냈고 한성부 좌윤, 함경도 관찰사를 일시 역임하였다.

장군은 사후에 병조 판서겸 지의금부사에 추증되었다. 장군의 추모행사는 1972년 이래로 매년 4월 22일에 거행하며 1978년 이곳에 사당을 마련하였다. 충익사 경내 입구에 우뚝솟은 의병탑은 곽재우 장군과 휘하 17장령의 위훈을 기리고 영혼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 하였으며 탑의 높이 27m로 가운데 둥근 18개의 백색환은 곽재우 장군과 17장령을 뜻하고 양쪽기둥의 팔자형은 횃불을 상징한다. 기념관에는 곽재우 장군의 전적도 5폭과 보물 제 671호로 지정된 장검등 유물등이 소장되어 있으며 경내 뜰에는 도 기념물 83호 모과 나무가 있다. 또한 주변에는 우리선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군립 의령 박물관과 남산정상에는 중동 고분군과 아래에 체육공원이 자리잡고 있어 가족과 함께 여가를 즐기거나 각종모임 장소로서 안성맞춤이다.




[승용차]

●남해 고속도로 군북 I.C - 지방도인 67호선을 이용- 의령읍내로 진입하여 - 의령천 도로 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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