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안군 칠북면
이 나무는 光州 安氏의 17대조 安汝居씨가 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심었다는 노거수이다. 安氏는 成均館 訓導를 지냈다고 한다. 옛날에는 뿌리 근처에서 많은 수액이 흘러나와 이것을 속병 치료에 사용하였다고한다.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목으로 음력 10월 1일에 이 나무에 소나 돼지를 잡아 놓고 동제를 지내왔다. 높이 26m이고 뿌리 근처의 둘레가 8.45m이며 가슴높이의 둘레는 5.82m로 수령은 500년 정도라고 보고 있다. 가지는 사방으로 퍼졌으며 크기는 다음과 같다. 동쪽: 9.6m, 서쪽: 12.76m, 남쪽: 11.0m, 북쪽: 12.0m 회화나무는 콩과의 낙엽교목으로서 원래 중국에서 들여온 나무이다. 중국에서는 이 나무를 고관대작의 무덤 앞에 심는 관습이 있었다. 따라서 중국에 갔던 우리나라의 사신들이 가지고와서 무덤 앞에 가꾸게 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꽃과 열매 등은 한방약재로 사용하였으므로 널리 퍼졌다. 꽃은 8월에 피며 황백색으로서 가지 끝에서 자라는 圓錐花序에 달린다. 꽃봉오리를 모아서 황색양료로 사용하며 槐黃이라고 한다. 열매는 10월에 성숙하며 꼬투리는 길이 5∼8㎝이고 다소 육질이며 열매 사이가 들어가서 염주같이 보이며 겨울 동안에도 나무에 달려 있다. 이것을塊實이라고 하며 한방약재로 사용한다. 忠淸道에서는 호야나무라고 부르는 곳이 있는데, 중국발음의 회화(塊花)에서 회야나무를 거쳐 호야나무로 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골에서는 샘터 또는 우물가에 심은 곳이 있다. 우리나라 지명에서 槐泉里 또는 塊井里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의 고궁이나 역사가 깊은 마을에는 흔히 큰 회화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도 그런범주에 속한다고 본다.
이 나무는 光州 安氏의 17대조 安汝居씨가 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심었다는 노거수이다. 安氏는 成均館 訓導를 지냈다고 한다. 옛날에는 뿌리 근처에서 많은 수액이 흘러나와 이것을 속병 치료에 사용하였다고한다.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목으로 음력 10월 1일에 이 나무에 소나 돼지를 잡아 놓고 동제를 지내왔다. 높이 26m이고 뿌리 근처의 둘레가 8.45m이며 가슴높이의 둘레는 5.82m로 수령은 500년 정도라고 보고 있다. 가지는 사방으로 퍼졌으며 크기는 다음과 같다. 동쪽: 9.6m, 서쪽: 12.76m, 남쪽: 11.0m, 북쪽: 12.0m 회화나무는 콩과의 낙엽교목으로서 원래 중국에서 들여온 나무이다. 중국에서는 이 나무를 고관대작의 무덤 앞에 심는 관습이 있었다. 따라서 중국에 갔던 우리나라의 사신들이 가지고와서 무덤 앞에 가꾸게 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꽃과 열매 등은 한방약재로 사용하였으므로 널리 퍼졌다. 꽃은 8월에 피며 황백색으로서 가지 끝에서 자라는 圓錐花序에 달린다. 꽃봉오리를 모아서 황색양료로 사용하며 槐黃이라고 한다. 열매는 10월에 성숙하며 꼬투리는 길이 5∼8㎝이고 다소 육질이며 열매 사이가 들어가서 염주같이 보이며 겨울 동안에도 나무에 달려 있다. 이것을塊實이라고 하며 한방약재로 사용한다. 忠淸道에서는 호야나무라고 부르는 곳이 있는데, 중국발음의 회화(塊花)에서 회야나무를 거쳐 호야나무로 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골에서는 샘터 또는 우물가에 심은 곳이 있다. 우리나라 지명에서 槐泉里 또는 塊井里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의 고궁이나 역사가 깊은 마을에는 흔히 큰 회화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도 그런범주에 속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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