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함안의 중심지인 가야읍 일대는 낮은 평야가 펼쳐져 있는데 그 뒤로 높은 지대로부터 남쪽과 동쪽으로 낮은 능선이 여러 갈래로 부채살같이 뻗어 있다. 해발 500m인 낮은 능선에 동쪽으로부터 차례로 말산리·신음리·가야리에 5∼6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의 봉분이 능선 정상부를 따라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현재 이들 고분군 가운데 대소형 고분 50여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작과 민묘 조성으로 훼손되어 있는 형편이다. 이 도항리고분군과 인접한 말산리고분군은 1917년 일본인에 의해 처음 조사되고 1980년 함안군에 의해 조사된 후 1991년에는 창원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정밀조사가 실시되어 1992년에 조사보고서가 발간되었다. 약 113여기의 고분이 확인되었고 그 대부분이 도항리에 군집되어 있다. 그 가운데 일부가 1992, 1993, 1994년 창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 조사되어 1차년도에는 목관묘(木棺墓) 12기, 목곽묘(木槨墓) 17기, 횡혈식석실(橫穴式石室) 2기, 橫口式石室 1기, 石槨墓 2기, 옹관묘(甕棺墓) 2기 등 30여기의 고분에서 토기류, 철기류, 마구류, 장신구류 등 360여점을 발굴하였다. 2차년도에는 목곽묘 7기, 수혈식석실(竪穴式石室) 3기, 석관묘 1기 등 총 11기의 유구가 조사되었고 출토유물로는 筒形器臺, 화염형투창고배(火焰形透窓高杯), 등잔형토기(燈盞形土器) 등 60여점의 토기류와 몽고발형(蒙古鉢形) 투구, 철정(鐵鋌), 유자이기(有刺利器) 등 59여점의 철기류와 금동제과대(金銅製 帶), 금제이식(金製耳飾), 청동환(靑銅環) 등 10여점의 장신구류가 출토되었다. 3차연도에는 竪穴式石室 2기가 발굴되어 고배등 토기류 56점과 말갑옷 등 철기류 115점, 곡옥 등 장신구류 25점, 인골 5구 등이 출토되었다. 발굴 유구 가운데 목곽묘가 반수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들 목곽묘의 중심연대는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후반까지로 추정되며 유구의 규모 및 내부시설, 출토유물 등의 차이에 의해 소형 墓群(400cm×150cm내외)과 대형 묘군(600cm×250cm내외)으로 분류된다. 유구의 선후관계는 전자에서 후자로 발달되어 묘제상의 변화에서 함안을 중심으로 한 안야국(安耶國)단계의 소국에서 보다 큰 영역을 지배하는 아라가야(阿羅伽倻) 단계로 발전하였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함안의 중심지인 가야읍 일대는 낮은 평야가 펼쳐져 있는데 그 뒤로 높은 지대로부터 남쪽과 동쪽으로 낮은 능선이 여러 갈래로 부채살같이 뻗어 있다. 해발 500m인 낮은 능선에 동쪽으로부터 차례로 말산리·신음리·가야리에 5∼6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의 봉분이 능선 정상부를 따라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현재 이들 고분군 가운데 대소형 고분 50여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작과 민묘 조성으로 훼손되어 있는 형편이다. 이 도항리고분군과 인접한 말산리고분군은 1917년 일본인에 의해 처음 조사되고 1980년 함안군에 의해 조사된 후 1991년에는 창원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정밀조사가 실시되어 1992년에 조사보고서가 발간되었다. 약 113여기의 고분이 확인되었고 그 대부분이 도항리에 군집되어 있다. 그 가운데 일부가 1992, 1993, 1994년 창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 조사되어 1차년도에는 목관묘(木棺墓) 12기, 목곽묘(木槨墓) 17기, 횡혈식석실(橫穴式石室) 2기, 橫口式石室 1기, 石槨墓 2기, 옹관묘(甕棺墓) 2기 등 30여기의 고분에서 토기류, 철기류, 마구류, 장신구류 등 360여점을 발굴하였다. 2차년도에는 목곽묘 7기, 수혈식석실(竪穴式石室) 3기, 석관묘 1기 등 총 11기의 유구가 조사되었고 출토유물로는 筒形器臺, 화염형투창고배(火焰形透窓高杯), 등잔형토기(燈盞形土器) 등 60여점의 토기류와 몽고발형(蒙古鉢形) 투구, 철정(鐵鋌), 유자이기(有刺利器) 등 59여점의 철기류와 금동제과대(金銅製 帶), 금제이식(金製耳飾), 청동환(靑銅環) 등 10여점의 장신구류가 출토되었다. 3차연도에는 竪穴式石室 2기가 발굴되어 고배등 토기류 56점과 말갑옷 등 철기류 115점, 곡옥 등 장신구류 25점, 인골 5구 등이 출토되었다. 발굴 유구 가운데 목곽묘가 반수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들 목곽묘의 중심연대는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후반까지로 추정되며 유구의 규모 및 내부시설, 출토유물 등의 차이에 의해 소형 墓群(400cm×150cm내외)과 대형 묘군(600cm×250cm내외)으로 분류된다. 유구의 선후관계는 전자에서 후자로 발달되어 묘제상의 변화에서 함안을 중심으로 한 안야국(安耶國)단계의 소국에서 보다 큰 영역을 지배하는 아라가야(阿羅伽倻) 단계로 발전하였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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