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암사는 한말 을사조약에 비분 자결한 연재 송병선(淵齋 宋秉璿), 경술국치 후 비분자결한 심석재 송병순(心石齋 宋秉珣), 고종황제가 서거하자 자신의 민적을 찢어버리고 침류정에서 사세시(辭世時) 한 수를 남기고 순국한 연호 이주환(連湖 李柱煥) 선생을 모신 사당이다. 1924년 사당을 시작으로 건립되었고, 이어 1928년 재실인 만인재를 지어 외삼문·내삼문·장판각으로 일곽을 이루게 되었다.
사당은 맞배지붕의 목조기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칸에 전퇴를 가졌고 만인재도 맞배지붕으로 조선후기 재실건축으로서의 형식을 잘 갖추고 있는 등 전체적으로 조선후기 건축적 양식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건축적 가치보다는 항일운동사와 관계된 인물의 역사적 기념성이나 향토사적 역사성이 높은 문화재이다.
사당은 맞배지붕의 목조기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칸에 전퇴를 가졌고 만인재도 맞배지붕으로 조선후기 재실건축으로서의 형식을 잘 갖추고 있는 등 전체적으로 조선후기 건축적 양식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건축적 가치보다는 항일운동사와 관계된 인물의 역사적 기념성이나 향토사적 역사성이 높은 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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