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경기도 도당굿은 경기도 일대의 한강 이남 지역에 전승하던 마을굿이다. 1960년대까지도 해안이나 도서의 어촌에 더 많이 전승되고 있었는데 지금 완전하게는 부천의 장마릉 한 곳에만 남아 있다. 경기도는 신이 내려서 무당이 되는 강신무 의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1970년대에 조사된 바로는 한강 이남 지역에 대를 이어서 무당이 되는 세습무 집안이 10여 집이 남아 있었다. 그들의 세습무속은 호남의 단골 무속과 유사한 점이 많았고, 대를 이어서 기예능을 연마하니 그 음악 무용이 강신무들보다는 월등하게 뛰어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도당굿은 다른 어느 지역과도 다른 독자적인 형태였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그 굿에는 먼저 남자무당인 화랭이들이 줄을 타고, 여기에는 기생의 소리와 춤들이 곁들여져서 축제분위기가 앞서는 것이었다. 굿 내용에도 많은 화랭이들이 참여해서 재담 과 덕담에 소리와 재주놀이들을 벌이고 축제분위기를 돋우었으나 지금은 화랭이도 무녀도 다 사라지고 한두 명씩만이 남아 있다. 다만 지금도 그 음악은 육자배기토리(시나위 조)로 되어 있고 장단도 강신무들과는 달리 호남지역에 가까우면서도 매우 다채로운 독자성을 지닌다. 그 음악성은 원초 판소리와 같기 때문에 판소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춤에도 무녀 춤보다 화랭이 춤이 아직도 많고 그것은 제의성 연희성 춤들이 아울러서 다양하다. 그 굿은 화랭이들이 중심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어서 지금도 무녀보다는 화랭이의 출연이 많으며, 군웅굿의 군웅노정기 같은 서사시의 가창은 판소리의 바탕이 되는 연희형태면에서도 관심을 끈다. 그밖에 놀이 형태도 다양해서 탈놀이들과의 관련에서도 상호간의 교류나 발전, 발생을 헤아려보는데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옛날에는 3일 이상으로 난장도 여는 큰 마을 축제였으나 지금 그러한 호응은 어렵고, 오전에 시작해서 밤새 계속하여 다음날 아침에 끝을 내는 것이 보통이다.
경기도 도당굿은 경기도 일대의 한강 이남 지역에 전승하던 마을굿이다. 1960년대까지도 해안이나 도서의 어촌에 더 많이 전승되고 있었는데 지금 완전하게는 부천의 장마릉 한 곳에만 남아 있다. 경기도는 신이 내려서 무당이 되는 강신무 의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1970년대에 조사된 바로는 한강 이남 지역에 대를 이어서 무당이 되는 세습무 집안이 10여 집이 남아 있었다. 그들의 세습무속은 호남의 단골 무속과 유사한 점이 많았고, 대를 이어서 기예능을 연마하니 그 음악 무용이 강신무들보다는 월등하게 뛰어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도당굿은 다른 어느 지역과도 다른 독자적인 형태였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그 굿에는 먼저 남자무당인 화랭이들이 줄을 타고, 여기에는 기생의 소리와 춤들이 곁들여져서 축제분위기가 앞서는 것이었다. 굿 내용에도 많은 화랭이들이 참여해서 재담 과 덕담에 소리와 재주놀이들을 벌이고 축제분위기를 돋우었으나 지금은 화랭이도 무녀도 다 사라지고 한두 명씩만이 남아 있다. 다만 지금도 그 음악은 육자배기토리(시나위 조)로 되어 있고 장단도 강신무들과는 달리 호남지역에 가까우면서도 매우 다채로운 독자성을 지닌다. 그 음악성은 원초 판소리와 같기 때문에 판소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춤에도 무녀 춤보다 화랭이 춤이 아직도 많고 그것은 제의성 연희성 춤들이 아울러서 다양하다. 그 굿은 화랭이들이 중심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어서 지금도 무녀보다는 화랭이의 출연이 많으며, 군웅굿의 군웅노정기 같은 서사시의 가창은 판소리의 바탕이 되는 연희형태면에서도 관심을 끈다. 그밖에 놀이 형태도 다양해서 탈놀이들과의 관련에서도 상호간의 교류나 발전, 발생을 헤아려보는데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옛날에는 3일 이상으로 난장도 여는 큰 마을 축제였으나 지금 그러한 호응은 어렵고, 오전에 시작해서 밤새 계속하여 다음날 아침에 끝을 내는 것이 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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