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시 교하면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산남리, 문발리, 및 신촌리와 김포군<金浦郡> 하성면 석탄리, 후평리 및 시암리의 한강하류 동서 하안<河岸>과 충적지<沖積地>, 그리고 임진강과 한강 하구가 교차되는 삼각주<三角洲> 일원의 광활한 갈대밭과 초지는 재두루미의 도래지<渡來地>였다. 이 곳에 언제부터 재두루미 집단이 도래하였는지는 불확실하나 1973년 가을(11월 20일)에야 비로소 재두루미 집단이 매년 규칙적으로 도래<渡來>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을(10월 하순-11월 중순)철에 남쪽으로 이동할 때에는 1,500-2,000마리, 월동기(12월-익년 2월)인 추운 겨울에는 200-300마리의 무리가 잔류하며, 봄의 북상시(3월 초순-중순)에는 200-500마리 내외의 무리가 모여들곤 하였다. 그러나 1978년 가을(11월 11일)의 1,500마리의 기록을 마지막으로 그 후에는 점차 감소하기 시작하여 1980년 1월 14-16일 같은 경우에는 한 마리의 월동 재두루미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1982년 가을(11월 20일)에는 25마리, 1983년 1월 7일-20일에는 33-52마리의 월동군에 불과한 적은 무리로 격감되고 있다. 또한 1983년 가을(10월 30일)에는 45마리, 1984년 북상시(3월 9일)에는 9마리 밖에 안 되는 적은 무리가 그 곳 하구에 기착하거나 월동하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같은 월동 기간인 1984년 1월 28일에는 111마리의 재두루미가 대성동 자유의 마을과 판문점 일원에서 월동하고 있었고 1984년의 북상시(3월 4일)에는 총 658마리에 이르는 재두루미 가운데 일부 46마리의 적은 무리는 임진강 부근의 한탄강 하안 부지와 부근의 논에까지 내려앉아 벼를 주워먹고 있었다. 이것은 한강하류와 삼각주<三角洲> 일원에서는 이미 재두루미의 식이식물<食餌植物>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는데 그 주된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지난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강 하류의 하안 부지와 중주<中洲> 및 하구<河口>의 삼각주<三角洲>는 매가지, 칠면초 및 수송나물 등 재두루미의 먹이가 되는 식물의 대집단으로 덮여 있었으나 1980년대에는 이미 갈대와 띠의 집단이 침입하기 시작하면서 일부 갯개미취만이 그대로 잔존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갈대로 덮여 있다. 1978년에는 먹이를 구하는 주된 장소 즉 채식지<採食地>는 삼각주를 중심으로 한 하구 전역에 걸친 넓은 면적이었다. 그러나 1982년에 와서는 그들의 주식물인 매가지와 수송나물 및 칠면초가 갈대와 띠로 바뀌게 되자 먹을 수 있는 식물(식이식물<食餌植物>)은 밀려나고 삼각주 갯벌 가장자리와 물길 가장자리의 매우 적은 면적에만 매가지와 수송나물 및 칠면초가 잔존하는 정도였는데 바로 그 가장자리가 1982년의 먹이 채취의 중심지였다. 결과적으로 갈대 집단지역의 확대로 삼각주 중심부에서 쫓겨난 재두루미 집단은 한강 하구와 임진강 하류의 광활한 개펄로 옮기게 되었다. 따라서 봄, 가을의 1,000마리의 통과군과 300마리 내외의 월동군도 그 곳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상과 같은 재두루미의 도래실태<渡來實態>.는 1974년 5월 24일 팔당 댐의 준공과 그보다 앞서 김포군 하성면 후평리의 농토 확충 계획에 따르는 토지 매립 및 수문 공사로 인한 하안의 매축 공사<埋築 工事>, 이북 관산포 하안의 석축공사 등으로 하구의 지형은 크게 변모하였으며 수위<水位>와 물길의 변경, 염도의 변화에 따른 식생의 변화에서 오는 결과라고 짐작된다. 두루미는 미꾸라지를 비롯한 동물성 먹이가 주식인데 반해 재두루미는 풀씨와 낟알 등 식물성 먹이가 주식물이긴 하나 하구 일원에서는 많은 동물성 먹이를 섭취하게 될 것이다. 파주 교하면은 강 하구에 위치해서 해수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특히 만조시에는 강하구의 개펄이 침수되어 물에 덮히거나 결빙되어 재두루미 집단들이 여러 곳에 무리로 흩어져서 채식과 휴식을 하기 때문에 월동기간중인 1월과 2월의 관찰한 개체수에 차이가 있다. 이 한강하구<漢江河口>와 임진강 하류지역은 대부분이 DMZ지역이다. 현재의 재두루미 도래지<渡來地>로서 천연기념물로 지정<指定>된 지역의 범위를 확대하여 임진강 하류에서 행주대교까지 철새보호구역으로 보존토록 하여야 할 것이다.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산남리, 문발리, 및 신촌리와 김포군<金浦郡> 하성면 석탄리, 후평리 및 시암리의 한강하류 동서 하안<河岸>과 충적지<沖積地>, 그리고 임진강과 한강 하구가 교차되는 삼각주<三角洲> 일원의 광활한 갈대밭과 초지는 재두루미의 도래지<渡來地>였다. 이 곳에 언제부터 재두루미 집단이 도래하였는지는 불확실하나 1973년 가을(11월 20일)에야 비로소 재두루미 집단이 매년 규칙적으로 도래<渡來>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을(10월 하순-11월 중순)철에 남쪽으로 이동할 때에는 1,500-2,000마리, 월동기(12월-익년 2월)인 추운 겨울에는 200-300마리의 무리가 잔류하며, 봄의 북상시(3월 초순-중순)에는 200-500마리 내외의 무리가 모여들곤 하였다. 그러나 1978년 가을(11월 11일)의 1,500마리의 기록을 마지막으로 그 후에는 점차 감소하기 시작하여 1980년 1월 14-16일 같은 경우에는 한 마리의 월동 재두루미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1982년 가을(11월 20일)에는 25마리, 1983년 1월 7일-20일에는 33-52마리의 월동군에 불과한 적은 무리로 격감되고 있다. 또한 1983년 가을(10월 30일)에는 45마리, 1984년 북상시(3월 9일)에는 9마리 밖에 안 되는 적은 무리가 그 곳 하구에 기착하거나 월동하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같은 월동 기간인 1984년 1월 28일에는 111마리의 재두루미가 대성동 자유의 마을과 판문점 일원에서 월동하고 있었고 1984년의 북상시(3월 4일)에는 총 658마리에 이르는 재두루미 가운데 일부 46마리의 적은 무리는 임진강 부근의 한탄강 하안 부지와 부근의 논에까지 내려앉아 벼를 주워먹고 있었다. 이것은 한강하류와 삼각주<三角洲> 일원에서는 이미 재두루미의 식이식물<食餌植物>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는데 그 주된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지난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강 하류의 하안 부지와 중주<中洲> 및 하구<河口>의 삼각주<三角洲>는 매가지, 칠면초 및 수송나물 등 재두루미의 먹이가 되는 식물의 대집단으로 덮여 있었으나 1980년대에는 이미 갈대와 띠의 집단이 침입하기 시작하면서 일부 갯개미취만이 그대로 잔존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갈대로 덮여 있다. 1978년에는 먹이를 구하는 주된 장소 즉 채식지<採食地>는 삼각주를 중심으로 한 하구 전역에 걸친 넓은 면적이었다. 그러나 1982년에 와서는 그들의 주식물인 매가지와 수송나물 및 칠면초가 갈대와 띠로 바뀌게 되자 먹을 수 있는 식물(식이식물<食餌植物>)은 밀려나고 삼각주 갯벌 가장자리와 물길 가장자리의 매우 적은 면적에만 매가지와 수송나물 및 칠면초가 잔존하는 정도였는데 바로 그 가장자리가 1982년의 먹이 채취의 중심지였다. 결과적으로 갈대 집단지역의 확대로 삼각주 중심부에서 쫓겨난 재두루미 집단은 한강 하구와 임진강 하류의 광활한 개펄로 옮기게 되었다. 따라서 봄, 가을의 1,000마리의 통과군과 300마리 내외의 월동군도 그 곳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상과 같은 재두루미의 도래실태<渡來實態>.는 1974년 5월 24일 팔당 댐의 준공과 그보다 앞서 김포군 하성면 후평리의 농토 확충 계획에 따르는 토지 매립 및 수문 공사로 인한 하안의 매축 공사<埋築 工事>, 이북 관산포 하안의 석축공사 등으로 하구의 지형은 크게 변모하였으며 수위<水位>와 물길의 변경, 염도의 변화에 따른 식생의 변화에서 오는 결과라고 짐작된다. 두루미는 미꾸라지를 비롯한 동물성 먹이가 주식인데 반해 재두루미는 풀씨와 낟알 등 식물성 먹이가 주식물이긴 하나 하구 일원에서는 많은 동물성 먹이를 섭취하게 될 것이다. 파주 교하면은 강 하구에 위치해서 해수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특히 만조시에는 강하구의 개펄이 침수되어 물에 덮히거나 결빙되어 재두루미 집단들이 여러 곳에 무리로 흩어져서 채식과 휴식을 하기 때문에 월동기간중인 1월과 2월의 관찰한 개체수에 차이가 있다. 이 한강하구<漢江河口>와 임진강 하류지역은 대부분이 DMZ지역이다. 현재의 재두루미 도래지<渡來地>로서 천연기념물로 지정<指定>된 지역의 범위를 확대하여 임진강 하류에서 행주대교까지 철새보호구역으로 보존토록 하여야 할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