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남구 양과동 715-1
이 건물은 신라< 新羅 > 말엽< 末葉 >의 대학자< 大學者 >인 고운< 孤雲 > 최치원< 崔致遠 > 선생< 先生 >을 봉향< 奉享 >하기 위하여 조선< 朝鮮 > 영조< 英祖 > 13년(1737)에 건립하여 매년 9월 9일 유림< 儒林 >에서 석채례< 釋菜禮 >를 올리고 있다. 본래는 지산사< 芝山祠 >라 칭하면서 최치원 선생은 주벽< 主壁 >으로 하여 후예< 後裔 >인 고암< 苽庵 > 최운한< 崔雲漢 > 형제와 약포< 藥圃 > 정오도< 鄭五道 > 선생을 배향하였다가 고종< 高宗 > 5년(1868) 대원군< 大院君 >의 서원철폐령< 書院撤廢令 >으로 훼철< 毁撤 >되었다. 그후 1922년 강당< 講堂 >을 건립, 지산재라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집으로 고당< 顧堂 > 김규태< 金奎泰 >가 쓴 '지산재< 芝山齋 >'란 현판< 懸板 >이 걸려 있다. 경내에는 내< 內 >·외3문< 外三門 >과 영당< 影堂 >이 있다.
이 건물은 신라< 新羅 > 말엽< 末葉 >의 대학자< 大學者 >인 고운< 孤雲 > 최치원< 崔致遠 > 선생< 先生 >을 봉향< 奉享 >하기 위하여 조선< 朝鮮 > 영조< 英祖 > 13년(1737)에 건립하여 매년 9월 9일 유림< 儒林 >에서 석채례< 釋菜禮 >를 올리고 있다. 본래는 지산사< 芝山祠 >라 칭하면서 최치원 선생은 주벽< 主壁 >으로 하여 후예< 後裔 >인 고암< 苽庵 > 최운한< 崔雲漢 > 형제와 약포< 藥圃 > 정오도< 鄭五道 > 선생을 배향하였다가 고종< 高宗 > 5년(1868) 대원군< 大院君 >의 서원철폐령< 書院撤廢令 >으로 훼철< 毁撤 >되었다. 그후 1922년 강당< 講堂 >을 건립, 지산재라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집으로 고당< 顧堂 > 김규태< 金奎泰 >가 쓴 '지산재< 芝山齋 >'란 현판< 懸板 >이 걸려 있다. 경내에는 내< 內 >·외3문< 外三門 >과 영당< 影堂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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