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 계산동2가 71
이 성당은 본래 초가삼간< 草家三間 >을 성당으로 사용하다가 십자형 목조성당을 1899년 준공하였으나 1900년 화재로 소실되어, 1902년에 현재의 성당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건립은 초대 본당신부인 Achille paule Roberto(1853~1922)가 설계하고 중국인이 시공을 맡아 하였다고 한다. 1918년 12월 24일에는 증축낙성식이 있었는데 이때의 시공자는 중국인 강의관< 姜義寬 >이라고 한다. 평면은 라틴십자형(Latin cross)으로 본랑(Nave)과 양측랑(Ansle)으로, 네이브의 폭은 아일폭의 2배를 이루고 있다. 네이브 천장은 뾰죽아취형의 배럴볼트(Barrel Vault)이고, 아일천장은 원통형볼트로 되어 있다. 네이브와 아일 경계부는 족주< 簇柱,clustered pier)를 두고, 반원아취로 마감하였다. 후진(Apse)은 5각형이고 반원아취의 아케이드(Arcade)를 형성하고 있다. 천장과 벽체는 프라스터로 마감하여 이의 흰색과 족주, 아취, 리브, 창틀 등의 흑벽돌색은 좋은 대조를 이루어 더한층 아름답다. 서측 정면 양측에는 2개의 종탑을 두었는데 이 종탑부에는 각각 8각의 첨탑< 尖塔 >을 두어 마무리하였다. 화강석쌓기의 기초부위에 흑색벽돌과 붉은벽돌로 벽체를 쌓고, 후렛 버트레스(Flat buttress)를 창들 사이에 등간격으로 두었다. 정면 중앙의 12장 꽃잎장식으로 이루어진 원화창< 圓花窓 >과 좌우 트란셉트(Transept) 의 원화창은 고딕적인 맛을 더해주고 있다. 한가지 부언할 것은 제대 뒤쪽에「루르드 성모동굴」을 입체적으로 구성한 것은 한국내 성당중에서 귀중한 실예라고 한다.
이 성당은 본래 초가삼간< 草家三間 >을 성당으로 사용하다가 십자형 목조성당을 1899년 준공하였으나 1900년 화재로 소실되어, 1902년에 현재의 성당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건립은 초대 본당신부인 Achille paule Roberto(1853~1922)가 설계하고 중국인이 시공을 맡아 하였다고 한다. 1918년 12월 24일에는 증축낙성식이 있었는데 이때의 시공자는 중국인 강의관< 姜義寬 >이라고 한다. 평면은 라틴십자형(Latin cross)으로 본랑(Nave)과 양측랑(Ansle)으로, 네이브의 폭은 아일폭의 2배를 이루고 있다. 네이브 천장은 뾰죽아취형의 배럴볼트(Barrel Vault)이고, 아일천장은 원통형볼트로 되어 있다. 네이브와 아일 경계부는 족주< 簇柱,clustered pier)를 두고, 반원아취로 마감하였다. 후진(Apse)은 5각형이고 반원아취의 아케이드(Arcade)를 형성하고 있다. 천장과 벽체는 프라스터로 마감하여 이의 흰색과 족주, 아취, 리브, 창틀 등의 흑벽돌색은 좋은 대조를 이루어 더한층 아름답다. 서측 정면 양측에는 2개의 종탑을 두었는데 이 종탑부에는 각각 8각의 첨탑< 尖塔 >을 두어 마무리하였다. 화강석쌓기의 기초부위에 흑색벽돌과 붉은벽돌로 벽체를 쌓고, 후렛 버트레스(Flat buttress)를 창들 사이에 등간격으로 두었다. 정면 중앙의 12장 꽃잎장식으로 이루어진 원화창< 圓花窓 >과 좌우 트란셉트(Transept) 의 원화창은 고딕적인 맛을 더해주고 있다. 한가지 부언할 것은 제대 뒤쪽에「루르드 성모동굴」을 입체적으로 구성한 것은 한국내 성당중에서 귀중한 실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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