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한강 남쪽을 방어하기 위해 남한산성과 함께 쌓은 성이다. 이후 삼국이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을 치르면서 고구려, 신라에게 차례로 점령당하는 과정을 겪었다. 고려 고종 19년(1232)에는 이 곳에서 몽고군과 격전이 벌어졌는가 하면 거란이 침입했을 때에는 고려 태조의 재궁을 옮겨오기도 했다.
지금의 북한산성은 조선시대 완성된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침이 이어지자 도성방어를 강화해야 한다는 축성론이 일어나 숙종조인 1711년에 대대적인 공사를 단행했다고 전해진다.
북한산성 축성과정은 조선 영조 21년(1745) 승 성능이 지은 '북한지'에 기록돼 있다. 이 문헌에 따르면 당시 성의 길이는 21리 60보이며 14개의 성문과 동장대 ·남장대·북장대와 행궁·군창 등의 시설이 설치됐다. 성안에는 승군이 주둔했던 중흥사 등 사찰 12곳과 우물 99개소, 저수지 26개소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확인되는 성의 둘레는12.7km이며 성내 면적은 2백여만평이다. 성문들은 대부분 제 모습을 잃었으나 대남문·대성문·대동문·보국문과 성곽 일부가 복원된 상태다.
[대중교통]
●구파발에서 북한산성행 시내버스 이용.
지금의 북한산성은 조선시대 완성된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침이 이어지자 도성방어를 강화해야 한다는 축성론이 일어나 숙종조인 1711년에 대대적인 공사를 단행했다고 전해진다.
북한산성 축성과정은 조선 영조 21년(1745) 승 성능이 지은 '북한지'에 기록돼 있다. 이 문헌에 따르면 당시 성의 길이는 21리 60보이며 14개의 성문과 동장대 ·남장대·북장대와 행궁·군창 등의 시설이 설치됐다. 성안에는 승군이 주둔했던 중흥사 등 사찰 12곳과 우물 99개소, 저수지 26개소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확인되는 성의 둘레는12.7km이며 성내 면적은 2백여만평이다. 성문들은 대부분 제 모습을 잃었으나 대남문·대성문·대동문·보국문과 성곽 일부가 복원된 상태다.
[대중교통]
●구파발에서 북한산성행 시내버스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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