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은 '서울의 진산'이다. 구름 위로 바위 봉우리를 솟구쳐 서울 시가지를 굽어보며 보살피고 그 허리엔 산성을 둘러 서울을 호위하고 있다. 주위엔 마치 조선말 도읍을 방위한 '오군영'처럼 도봉산, 북악산, 남산, 남한산, 관악산 등을 거느리고 있다. 삼각형을 이루듯 정상에 우뚝 솟은 백운대(837m), 인수봉(810m), 만경대(800m)의 세 바위봉우리는 북한산의 정기를 보듬은 듯 하다. 이 때문에 '삼각산'이란 별칭을 얻었지만 일제시대 조선의 정기를 끊겠다는 일인들에 의해 정수리에 못침이 박히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백운대 마당바위
북한산은 서울 시민의 산이요, 경기도민의 산이요, 산악인의 산이다. 현대사의 질곡 속에, 고달픈 삶에 지친 도시민들에겐 하나의 큰 위안이었다. 등산로가 잘 발달돼 있어 도시민들이 일상 생활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웃과 같은 산이다. 전문 산악인에게 알맞은 암벽이 곳곳에 솟아있다. 특히 인수봉은 '한국 바위의 메카'로 불려 언제든지 줄 하나에 몸을 맡긴 클라이머들을 볼 수 있다.
인수봉
북한산을 오를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북한산성이다. 조선 숙종 37년(1711년)에 축조된 북한산성은 길이 8km, 평균 높이 7m에 이른다. 당시 모두 14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대남문, 대서문, 대성문, 보국문, 용암문, 위문 등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백운대
산성이 자리잡은 주능선 아래쪽에는 우이동계곡, 구천계곡, 정릉계곡, 평창계곡, 진관사계곡, 삼천사계곡 등 깊은 계곡들이 펼쳐진다. 계곡과 기암괴석 여기 저기에 북한산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사찰과 문화유적들이 자리잡고 있다.
승가사, 도선사, 원효암, 문수암, 상운사, 태고사, 진관사 등 사찰이 수백, 수천년 세월의 고색을 감춘채 방문객을 맞이한다. 진흥왕 순수비 유지, 태고사 원증국사탑비, 승가사의 좌상 마애불, 삼천사의 마애여래입상, 태고사 보우국사 사리탑 등 보물급 문화재를 볼 수 있는 것도 북한산 산행의 또다른 기쁨이다.
원효봉
백운대
인수봉과 백운대
대서문
영봉
[신라진흥왕순수비유지]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가 있던 자리.
비 의 내용은 진흥왕이 북쪽 영토를 개척하여 고구려 영토였던 한강 유역과 함경남도 지역까지 점유하고 나서 진흥왕 16년(555년)에 왕이 직접 현지를 순행하며 민간의 실정을 살피고 지방에 있는 유공자에게 은상을 베푼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
원비(국보 제3호)는 상부에 개석을 끼웠던 흔적이 있으나 없어지고 풍화가 심하여 1972년에 경복궁내로 옮겨놓고 이곳은 사적으로 지정하여 표석을 세웠다.
[정릉]
사적 208호.
조선 태조 이성계의 둘째 왕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
신덕왕후는 태조가 즉위한 뒤 왕비로 책봉 되었고 방번, 방석 두 왕자와 경순공주를 낳았으나 두 아들이 태종 이방원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는 비극을 겪었다. 신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태조는 상심하다가 흥천사를 세웠다.
신덕왕후를 증오했던 태종은 태조가 승하후 능을 동소문 밖으로 옮겨 봉분을 깎은 뒤 정자각을 헐어 버렸다.
원래 중구 정동(현재 덕수궁 부근)에 있던 정릉은 현재 자리인 정릉동 산 87-16으로 옮겨져 복원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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