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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 백제의 숨결이 묻어나는 천년고찰

by 넥스루비 2007. 8. 23.

선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의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577년(백제 위덕왕 24)에 백제 고승 검단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신라 진흥왕이 만년에 왕위를 내주고 나서 처음 머무른 곳이 이곳 선운사 경내라 하였다. 즉 진흥왕이 좌변굴(左邊窟, 진흥굴, 도솔암 밑에 있다)에서 자다가 꿈 속에서 바위가 갈라지며 미륵삼존불이 출현하는 것을 보고 감응하여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하고 다시 이를 크게 일으켰으니 이 중애사가 선운사 내에서 첫 번째로 창건된 절이었다는 것이다.


선운사는 그 뒤 1354년(공민왕 3)에 효정이 중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조선 초기에는 다시 폐허화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성종3년(1472)에 극유 행호(克乳幸浩, 생몰년 미상)선사에 의해 10여년 동안 크게 중창된다.

10여년에 걸친 극유선사의 중창불사로 하여 선운사는 옛모습을 되찾았는데 건물이 189동이나 되는 웅장한 가람 규모였다. 그러나 100여년이 지난 1597년(선조 30) 정유왜란 때 어실(御室)을 제외한 모든 당우가 소실되고 말았다.

선운사에는 여느 절에서는 볼 수 없는 훌륭한 기록들이 잘 보존되고 있어 절의 발자취를 살펴 볼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경내 수많은 당우(堂宇)들의 증개축과 불상 불화조성 등의 사실을 낱낱이 적어 놓은 「전각요사창건연대방명열목」과 1698년(숙종 24)에 김우항이 쓴 「선운사중신기」당시 순찰사 김우항을 필두로 중수에 참여하고 당시 선운사에 살고 있던 대중 260여명을 기록해 두고 있어 이 기록은 당시의 사찰규모와 조직 등을 알 수 있는 중요 기록으로 소중한 것들이다.

현재 선운사가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로는 보물이 5점, 천연기념물 3점, 지방유형문화재 8점, 지방문화재자료 2점 등 총 18점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19세기 전반까지 이 절에 속한 산내암자(山內庵子)가 무려 50여곳이나 이르렀다지만 지금은 동운암(東雲庵), 석상암(石床庵), 참당암(懺堂庵), 도솔암(兜率庵) 등 4개의 암자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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