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신덕왕 2년(913년)에 대경대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진덕여왕 3년(649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각각 전해지고 있으나 정확한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다.창건 당시 당우가 304칸에 달했으며 300여 스님이 머물렀다고 하니 대찰 이었음에 분명하다.
이 절은 입구에 있는 은행나무로 더 유명하다. 천년기념물 30호로 지정돼 있는 이 은행나무의 수령은 1천1백년이 넘는다. 의장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라고도 하고 신라의 마지막 왕자였던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들어가면서 꽂아놓은 지팡이라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면 미리 알고 울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신령스러움 탓으로 조선 세종때 나라에서 이 은행나무에 정삼품의 직위를 하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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