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산 중턱 거대한 은행나무를 호위병 삼아 자리잡은 신라시대 고찰.
신라 문무왕 8년에 원각대사가 창건하고 그후 효소왕이 육궁백관을 인솔하고 피난했다는전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고려 문종때 대각국사가 절 이름을 국청사라고 이름 지은 것을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서 머물면서 나라의 태평함과 백성의 편안함을 기원한다는 뜻으로 현재의 절 이름으로 바꿨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현재의 대웅전은 조선 후기의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절 앞에는 둘레가 6m나 되는 은행나무(천연기념물 223호)이 마치 절의 호위병인양 서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3층석탑(보물 533호) 원각국사비(보물 534호) 등이 있다.
절 아래에서 절 입구까지는 계곡이 이어져 절경을 이루는데 여름철 피서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대중교통]
●영동읍과 옥천읍에서 영국사 입구까지 가는 시내버스가 하루 네번 있다.
신라 문무왕 8년에 원각대사가 창건하고 그후 효소왕이 육궁백관을 인솔하고 피난했다는전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고려 문종때 대각국사가 절 이름을 국청사라고 이름 지은 것을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서 머물면서 나라의 태평함과 백성의 편안함을 기원한다는 뜻으로 현재의 절 이름으로 바꿨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현재의 대웅전은 조선 후기의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절 앞에는 둘레가 6m나 되는 은행나무(천연기념물 223호)이 마치 절의 호위병인양 서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3층석탑(보물 533호) 원각국사비(보물 534호) 등이 있다.
절 아래에서 절 입구까지는 계곡이 이어져 절경을 이루는데 여름철 피서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대중교통]
●영동읍과 옥천읍에서 영국사 입구까지 가는 시내버스가 하루 네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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