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성은 산의 정상부를 성내(城內)로 하는 포곡성 형태를 취하고 있고 성벽은 자연석으로 쌓아 올린 협축수법으로 만들었다.
산성의 축조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 때 백제가 신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처음 쌓았다고 하며, 훗일 임진왜란때 왜군의 침입을 방비하기 위해서 다시 수축하였다. 정유재란 때는 이일(李鎰)장군이 가등청정(加藤淸正)의 군사와 이곳에서 싸웠으나 끝내 함락되고 말았다고 한다. 성의 주변 곳곳에 돌을 쌓아 놓은 돌무더기가 있는데, 이것은 남매가 성을 쌓다 남은 돌이라 하고 누이동생이 돌을 치마에 담아 운반하였으므로 이 성을 여성(女城) 또는 치마성이라고도 한다. 성의 길이는 1.5㎞, 높이는 2m 정도이며 성안은 현재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산성의 축조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 때 백제가 신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처음 쌓았다고 하며, 훗일 임진왜란때 왜군의 침입을 방비하기 위해서 다시 수축하였다. 정유재란 때는 이일(李鎰)장군이 가등청정(加藤淸正)의 군사와 이곳에서 싸웠으나 끝내 함락되고 말았다고 한다. 성의 주변 곳곳에 돌을 쌓아 놓은 돌무더기가 있는데, 이것은 남매가 성을 쌓다 남은 돌이라 하고 누이동생이 돌을 치마에 담아 운반하였으므로 이 성을 여성(女城) 또는 치마성이라고도 한다. 성의 길이는 1.5㎞, 높이는 2m 정도이며 성안은 현재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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