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 남산동 735-4
조선< 朝鮮 > 태조< 太祖 > 7년(1398)에 교동< 校洞 >에 초창된 것으로 전해진다. 임진왜란< 壬辰倭亂 > 때 전부 소실< 燒失 >된 것을 7년 뒤인 선조< 宣祖 > 32년(1599) 달성공원 근처에 재건< 再建 >하고 선조 38년(1605)에 다시 교동으로 이건하였다. 그후 시가가 넓어지고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1932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 1973년 시< 市 >에서 향교< 鄕校 >를 보수 정화하고, 전통적인 유교문화< 儒敎文化 >의 진흥을 위하여 영남각지< 嶺南各地 >에서 유림< 儒林 >들이 모여들어 연 2회(춘< 春 >, 추< 秋 >) 석전대제< 釋奠大祭 >를 올리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공포< 공包 >를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짜올린 다포식< 多包式 > 건축< 建築 >으로, 단층 맞배기와집이다.
조선< 朝鮮 > 태조< 太祖 > 7년(1398)에 교동< 校洞 >에 초창된 것으로 전해진다. 임진왜란< 壬辰倭亂 > 때 전부 소실< 燒失 >된 것을 7년 뒤인 선조< 宣祖 > 32년(1599) 달성공원 근처에 재건< 再建 >하고 선조 38년(1605)에 다시 교동으로 이건하였다. 그후 시가가 넓어지고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1932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 1973년 시< 市 >에서 향교< 鄕校 >를 보수 정화하고, 전통적인 유교문화< 儒敎文化 >의 진흥을 위하여 영남각지< 嶺南各地 >에서 유림< 儒林 >들이 모여들어 연 2회(춘< 春 >, 추< 秋 >) 석전대제< 釋奠大祭 >를 올리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공포< 공包 >를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짜올린 다포식< 多包式 > 건축< 建築 >으로, 단층 맞배기와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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