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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효자정려각 - 하광신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조정에서 정문을 세운 것

by 넥스루비 2007. 8. 7.
대구 수성구 만촌동 389-9

효자 하공정려비는 고려때 이부시랑<吏部時郞>을 지낸 하광신<夏光臣>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조정에서 정문을 세운 것이다. 하광신은 원래 중국 송나라의 대도독으로 고려시대 우리나라에 정착하면서 달성군으로 봉군된 하흠<夏欽>의 아들 하용의 손자로 어릴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매서운 찬바람이 불어치는 겨울에 복숭아를 구해다준 전설적인 얘기가 숱하게 많다. 하광신의 효성이 지극하다는 소식을 들은 충숙왕(1327년)은 하광신이 살던 마을에 이부시랑 하광신 지려<吏部時郞 夏光臣 之閭>란 정문을 세우고 그의 자손들에게 대대로 부역을 면제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은 조선때도 계속되어 1896년(고종 6년) 12월 그의 자손들에게 세금과 부역을 일체 면제시키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그 공문 원본은 후손인 하재형씨가 지금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원래 하광신의 정력각이 세워진 곳은 달성하씨들이 대대로 살았던 현재의 대봉동 수도산(달성하씨들의 종산이었으나 일제때 빼앗겼다고 함) 부근이었으나, 하인경을 제외하고는 모두 희생되어 명맥마저 끊길 뻔 하였다. 따라서 현재의 달성하씨들 모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史>'를 지낸 하인경의 후손들로서 임란 이루 현재까지 만촌동에서 대대로 살고 있다. 현재의 정려비는(만촌동 형제봉 기슭의 비각등)(속칭 빈집거리) 1781년(정조 5년) 2월에 중건하였으나 일제때 경부선 철도가 놓이면서 헐려 현 위치로 옮긴 것이다. 비문은 이조 판서겸 홍문관 대제학이던 황경원이 지었고 두전과 비문의 글씨는 통훈대부 사헌부지평 이약채<李若菜>가 썼다. 현재 만촌동에 살고 있는 달성 하씨들이 매년 돌아가며 유사<有司>를 정하여 돌보고 있어 관리가 잘되고 있다. 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단칸 건물로 중앙에 정려비가 있다. 건물의 구조는 간략한 3량가<樑架>로 낮은 기단위에 원형의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2익공계 건물이다. 대들보 위에 제형 판대공을 놓아 마루도리를 받고 있으며, 지붕은 겹처마에 박공지붕이다. 건물에는 모로 단청을 하였다. 이 건물은 조선 후기 정려각의 형식을 잘 보여주는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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