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북구 산격동 1370 경북대학교박물관
이 반가사유상은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의 마애불좌상< 磨崖佛坐像 > 옆에 있던 것을 1966년 경북대학교로 옮겨다 놓은 것이다. 높이 160㎝가량의 이 본상은 현재 상반신은 깨어져 없어지고, 하반신과 하반신과는 별도로 조성된 것으로 보여지는 원형< 圓形 >의 연화문< 蓮華紋 > 족좌< 足座 >만이 남아있지만, 우수한 조각기법으로 제작된 보기드문 수작< 秀作 >이다. 상반신은 형식은 잘 알 수 없으나, 상의를 벗은 듯하며 하체에 표현된 법의< 法衣 >는 매우 얇아서 두 다리의 윤곽선이 그대로 드러난다. 왼쪽 무릎 위에 올려놓은 오른쪽 다리는 매우 크고 무릎을 높이 솟게 하여 강조하고 있다. 올려놓은 오른쪽 다리 밑에는 3단으로 형성된 옷주름이 유려하게 흐르고 있는데 그 선< 線 >들이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어 생동감을 준다. 이들 옷주름 옆에는 커다란 사각형의 고리와 화려한 영락< 瓔珞 >이 늘어져 있다. 상의 뒷면에는 상의 옷주름만을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어 전면< 前面 >을 위주로 조각하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대좌< 臺座 >는 거의 원통형이며 둘레에는 작은 앙련단엽문< 仰蓮單葉紋 >이 돌려져 있다. 함께 발견된 족좌< 足座 >는 약 70㎝가량의 원반형으로 7개의 복련< 伏蓮 >이 새겨져 있다. 이 반가상은 양식적인 면에서 국보 제 83호 금동보살반가상과 비교되는 점을 지니고 있으며, 왼손의 위치, 오른쪽 무릎의 팽창, 예리하고 극히 사실적인 옷주름, 화려한 영락 등에서는 뛰어난 조각기법으로 이루어진 상< 像 >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반가상은 전체적으로 탄력있고, 당당하며, 볼륨이 강조된 독특하고도 사실적인 표현수법을 보여주는 삼국시대 말∼통일신라시대 초기에 걸친 7세기 중엽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반가사유상은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의 마애불좌상< 磨崖佛坐像 > 옆에 있던 것을 1966년 경북대학교로 옮겨다 놓은 것이다. 높이 160㎝가량의 이 본상은 현재 상반신은 깨어져 없어지고, 하반신과 하반신과는 별도로 조성된 것으로 보여지는 원형< 圓形 >의 연화문< 蓮華紋 > 족좌< 足座 >만이 남아있지만, 우수한 조각기법으로 제작된 보기드문 수작< 秀作 >이다. 상반신은 형식은 잘 알 수 없으나, 상의를 벗은 듯하며 하체에 표현된 법의< 法衣 >는 매우 얇아서 두 다리의 윤곽선이 그대로 드러난다. 왼쪽 무릎 위에 올려놓은 오른쪽 다리는 매우 크고 무릎을 높이 솟게 하여 강조하고 있다. 올려놓은 오른쪽 다리 밑에는 3단으로 형성된 옷주름이 유려하게 흐르고 있는데 그 선< 線 >들이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어 생동감을 준다. 이들 옷주름 옆에는 커다란 사각형의 고리와 화려한 영락< 瓔珞 >이 늘어져 있다. 상의 뒷면에는 상의 옷주름만을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어 전면< 前面 >을 위주로 조각하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대좌< 臺座 >는 거의 원통형이며 둘레에는 작은 앙련단엽문< 仰蓮單葉紋 >이 돌려져 있다. 함께 발견된 족좌< 足座 >는 약 70㎝가량의 원반형으로 7개의 복련< 伏蓮 >이 새겨져 있다. 이 반가상은 양식적인 면에서 국보 제 83호 금동보살반가상과 비교되는 점을 지니고 있으며, 왼손의 위치, 오른쪽 무릎의 팽창, 예리하고 극히 사실적인 옷주름, 화려한 영락 등에서는 뛰어난 조각기법으로 이루어진 상< 像 >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반가상은 전체적으로 탄력있고, 당당하며, 볼륨이 강조된 독특하고도 사실적인 표현수법을 보여주는 삼국시대 말∼통일신라시대 초기에 걸친 7세기 중엽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