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 수지읍 신봉리 산111
명종< 明宗 > 원년< 元年 >(1171)에 그에게 좌세< 佐世 >의 호< 號 >를 내리고 내전< 內殿 >에 불러 만수가사< 萬繡袈裟 >를 하사< 下賜 >하였다고 한다. 명종< 明宗 > 8년(1178)에 나이 53세로 입적< 入寂 >하였는데 왕이 크게 슬퍼하여 국사를 삼고 시호< 諡號 >를 현오< 玄悟 >라 하고 동림산 기슭에서 화장하였다. 비문의 자경< 字徑 >은 약 3.3cm의 해서< 楷書 >이며 비형은 위의 양 모서리를 귀접은 규형< 圭形 >이고 지대석도 간략하여 고려말< 高麗末 > 석비< 石碑 >의 새로운 양식을 보이고 있다.
명종< 明宗 > 원년< 元年 >(1171)에 그에게 좌세< 佐世 >의 호< 號 >를 내리고 내전< 內殿 >에 불러 만수가사< 萬繡袈裟 >를 하사< 下賜 >하였다고 한다. 명종< 明宗 > 8년(1178)에 나이 53세로 입적< 入寂 >하였는데 왕이 크게 슬퍼하여 국사를 삼고 시호< 諡號 >를 현오< 玄悟 >라 하고 동림산 기슭에서 화장하였다. 비문의 자경< 字徑 >은 약 3.3cm의 해서< 楷書 >이며 비형은 위의 양 모서리를 귀접은 규형< 圭形 >이고 지대석도 간략하여 고려말< 高麗末 > 석비< 石碑 >의 새로운 양식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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