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212-1
이 당간지주< 幢竿支柱 >는 중초사지< 中初寺址 > 삼층석탑< 三層石塔 >과 함께 남아 있으며 양 지주가 원상대로 85cm의 간격을 두고 동서< 東西 >로 대립하여 있다. 아무런 조각이 없어 장식적< 裝飾的 >인 의장< 意匠 >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상부< 上部 >에는 약간의 가공< 加工 >이 있어 고식< 古式 >을 보이고 있다. 양 지주의 상부< 上部 >는 내측면< 內側面 >의 면 위에서 바깥면으로 내려오면서 활< 弧 >의 모양을 그리며 위로부터 굴곡 없이 깎여졌다. 당간< 幢竿 >을 고정시키는 간공< 杆孔 >은 양 지주 모두 상·중·하의 3곳에 간구< 杆構 >를 마련하여 장치하였는데 상부는 내면 상단에 장방공< 長方孔 >을 마련하여 간을 장치하였고 중·하부는 관통된 원공< 圓孔 >에 간을 시설하게 되어 있다. 기저< 基底 >에는 장대석< 長臺石 >의 기반석< 基盤石 >을 지주 사이와 양지주의 외축에 각기 1매씩 깔아서 기대를 삼고 있으며 간대는 지주 사이의 장대석 중심부에 원공을 시공하고 그 주변에 원대< 圓帶 >로 돌려서 마련한 간단한 간대이다. 이곳을 중초사지< 中初寺址 >라고 하는 것은 서쪽 지주의 바깥에 각자< 刻字 >한 명문< 銘文 >에 의한 것이며 이 지주는 신라< 新羅 > 흥덕왕< 興德王 > 원년< 元年 >(826) 8월 6일에 채석하여 그 이듬해인 흥덕왕 2년(827) 2월 30일에 세운 조성년대< 造成年代 >가 확실한 명문이 있는 국내 유일의 당간지주이다.
이 당간지주< 幢竿支柱 >는 중초사지< 中初寺址 > 삼층석탑< 三層石塔 >과 함께 남아 있으며 양 지주가 원상대로 85cm의 간격을 두고 동서< 東西 >로 대립하여 있다. 아무런 조각이 없어 장식적< 裝飾的 >인 의장< 意匠 >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상부< 上部 >에는 약간의 가공< 加工 >이 있어 고식< 古式 >을 보이고 있다. 양 지주의 상부< 上部 >는 내측면< 內側面 >의 면 위에서 바깥면으로 내려오면서 활< 弧 >의 모양을 그리며 위로부터 굴곡 없이 깎여졌다. 당간< 幢竿 >을 고정시키는 간공< 杆孔 >은 양 지주 모두 상·중·하의 3곳에 간구< 杆構 >를 마련하여 장치하였는데 상부는 내면 상단에 장방공< 長方孔 >을 마련하여 간을 장치하였고 중·하부는 관통된 원공< 圓孔 >에 간을 시설하게 되어 있다. 기저< 基底 >에는 장대석< 長臺石 >의 기반석< 基盤石 >을 지주 사이와 양지주의 외축에 각기 1매씩 깔아서 기대를 삼고 있으며 간대는 지주 사이의 장대석 중심부에 원공을 시공하고 그 주변에 원대< 圓帶 >로 돌려서 마련한 간단한 간대이다. 이곳을 중초사지< 中初寺址 >라고 하는 것은 서쪽 지주의 바깥에 각자< 刻字 >한 명문< 銘文 >에 의한 것이며 이 지주는 신라< 新羅 > 흥덕왕< 興德王 > 원년< 元年 >(826) 8월 6일에 채석하여 그 이듬해인 흥덕왕 2년(827) 2월 30일에 세운 조성년대< 造成年代 >가 확실한 명문이 있는 국내 유일의 당간지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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