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금정구 장전동 482
금정산< 金井山 >에 성을 처음 쌓은 것이 언제인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조선< 朝鮮 > 현종< 顯宗 > 8년(1667)에 왜구방어책< 倭寇防禦策 >을 논의할 때 금정산성의 보수를 거론한 것을 보면 그 이전부터 산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지금 남아 있는 산성의 기초는 임진왜란< 壬辰倭亂 >과 병자호란< 丙子胡亂 >을 겪고 난 후인 숙종< 肅宗 > 29년(1703)에 국방< 國防 >에 대한 새로운 인식 속에서 축성< 築城 >된 것이다.
그후 태평성대< 太平聖代 >가 계속되면서 금정산성은 돌보는 이 없어 폐허가 된 것을 순조< 純祖 > 8년(1808) 동래부사< 東萊府使 > 오한원< 吳翰源 >이 성문을 수축하고, 무너진 성곽을 다시 쌓아 산성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이 비는 이때의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비 표면에는 금정산성을 처음 쌓은 것부터 다시 설치하게 된 경위와 부설공사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비음< 碑陰 >에는 공사를 감독한 사람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 비는 커다란 바위에 구멍을 파서 비좌를 대신한 까닭에 비< 碑 >가 원래의 위치를 지키고 있어 동래부에서 금정산성으로 오르는 길이 이곳을 거쳤음을 알 수 있게 하여 줄 뿐만 아니라 금정산성의 치폐< 治廢 > 및 부설경위< 復設經緯 >를 잘 밝혀주는 소중한 비석이다.
[승용차]
온천동 -> 금정초등학교
[대중교통]
금정초등학교에서 하차하여 유한약국과 한신시티빌이 위치한 골목으로 280M 정도 걸어서 장전만화방 옆 골목으로 걷는다.
시내버스 : 77,80,80-1,100-1,121,202,301
금정산< 金井山 >에 성을 처음 쌓은 것이 언제인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조선< 朝鮮 > 현종< 顯宗 > 8년(1667)에 왜구방어책< 倭寇防禦策 >을 논의할 때 금정산성의 보수를 거론한 것을 보면 그 이전부터 산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지금 남아 있는 산성의 기초는 임진왜란< 壬辰倭亂 >과 병자호란< 丙子胡亂 >을 겪고 난 후인 숙종< 肅宗 > 29년(1703)에 국방< 國防 >에 대한 새로운 인식 속에서 축성< 築城 >된 것이다.
그후 태평성대< 太平聖代 >가 계속되면서 금정산성은 돌보는 이 없어 폐허가 된 것을 순조< 純祖 > 8년(1808) 동래부사< 東萊府使 > 오한원< 吳翰源 >이 성문을 수축하고, 무너진 성곽을 다시 쌓아 산성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이 비는 이때의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비 표면에는 금정산성을 처음 쌓은 것부터 다시 설치하게 된 경위와 부설공사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비음< 碑陰 >에는 공사를 감독한 사람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 비는 커다란 바위에 구멍을 파서 비좌를 대신한 까닭에 비< 碑 >가 원래의 위치를 지키고 있어 동래부에서 금정산성으로 오르는 길이 이곳을 거쳤음을 알 수 있게 하여 줄 뿐만 아니라 금정산성의 치폐< 治廢 > 및 부설경위< 復設經緯 >를 잘 밝혀주는 소중한 비석이다.
[승용차]
온천동 -> 금정초등학교
[대중교통]
금정초등학교에서 하차하여 유한약국과 한신시티빌이 위치한 골목으로 280M 정도 걸어서 장전만화방 옆 골목으로 걷는다.
시내버스 : 77,80,80-1,100-1,121,20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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