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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패총 - 유일하게 지정. 보호되고 있는 삼한시대 패총

by 넥스루비 2007. 8. 7.
부산 동래구 낙민동 100-18

유적은 1930년에 철도공사를 할 때 독무덤(옹관묘<甕棺墓>) 4기가 발견되면서 알려졌고 1967-1969년에 정식 발굴조사를 하여 쌓임층이 3개 층위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유적의 성격은 김해 패총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적은 원래 낙민동 일대의 야트막한 대지에 넓게 분포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220평 정도만 보호구역으로 남아 있다. 현재는 바닷가로부터 6㎞ 정도 떨어져 있지만 유적이 형성될 당시에는 바닷가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발굴에서 나타난 결과를 보면 쌓임층의 두께가 가장 두터운 곳은 2m 가량 되며 유적의 층위는 위로부터 겉흙층(포토층<表土層>), 조가비섞임층(혼토패층<混土貝層>), 그리고 회색찰흙층(회색점토층<灰色粘土層>으로 이루어졌다.
바닥에 있는 찰흙층에는 조가비가 없고, 재와 불탄 흙, 숯부스러기 등이 있으며, 쇠찌꺼기(철재<鐵滓>)가 굳어진 듯한 단단한 면이 있는 것으로 보아 쇠부리터(야철지<冶鐵址>)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회색찰흙층은 유적의 지형경사를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데 동쪽으로 높은 곳에서 쇠를 녹이던 유구로 볼 수 있는 구조물이 나와 그런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다.
깊이 20㎝ 정도의 움을 파고 만든 것으로 길이 75㎝, 너비 25㎝쯤 되는 구조물로 벽에 찰흙을 발랐는데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시기에 해당하는 유적으로서는 처음 나온 것이다.
유적에서 나온 유물들을 보면 토기가 가장 많고 그밖에 뼈·뿔 연모와 철기들이 있고 석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토기는 김해식 토기라고 부르는 적갈색 연질토기와 회청색 경질토기가 있다. 회청색 토기에는 때림무늬(타날문<打捺文>)가 많고 적갈색 토기에는 무늬없는 것이 많다.
토기 생김새는 바닥이 둥글고 쇠뿔손잡이(우각형파수<牛角形把手>)가 달린 것, 토기 시루 등이 많다.
흙을 빚어 만든 가락바퀴도 있다.
뼈나 뿔로 만든 손칼(도자<刀子>), 바늘(골침<骨針>), 그리고 뿔로 만든 칼손잡이가 있다.
유적 언저리에서 발견한 독무덤은 적갈색 토기를 두 개 붙여 만든 것으로 유적의 층위상 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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