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시 교동 725-2번지
신라 김유신 (595~673) 장군의 신주(神主)를 모신 사당으로 화산사 또는 흥무왕사(興武王祠)라고도 한다. 정면3칸, 측면2칸, 단층맞배지붕형식.
신라의 삼국통일 후 문무왕 4년(664), 말갈족이 빈번히 침략하자 김유신 장군은 왕명을 받고 이를 퇴치하고자 명주(溟州-지금의 강릉)에 머물게 되었다. 장군은 화부산(花浮山) 부근에 주둔하면서 훈련을 강화하여 말갈족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하여 국경지였던 명주지방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이에 감복한 백성들은 감사히 여겨 장군이 죽은 후 사당을 지어 위패를 모시고 매년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화부산사(花浮山祠)가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고종 21년(1884)에 영남후손 홍두의 주선으로 중건하였고 1936년 강릉역의 부지가 확장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1993년 도로 확장사업으로 재실은 폐지되었고 경내에는 기적비(순충장열흥무왕화산재기적비)와 사당만 남아 있어 김해 김씨 종중에서 해마다 다례(茶禮)를 지내고 관리해오고 있다. 기적비의 비문은 한말에 도지부대신(度支府大臣)을 역임한 심상훈이 지었으며 김유신장군의 생애와 공적을 기록하고 있다.
신라 김유신 (595~673) 장군의 신주(神主)를 모신 사당으로 화산사 또는 흥무왕사(興武王祠)라고도 한다. 정면3칸, 측면2칸, 단층맞배지붕형식.
신라의 삼국통일 후 문무왕 4년(664), 말갈족이 빈번히 침략하자 김유신 장군은 왕명을 받고 이를 퇴치하고자 명주(溟州-지금의 강릉)에 머물게 되었다. 장군은 화부산(花浮山) 부근에 주둔하면서 훈련을 강화하여 말갈족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하여 국경지였던 명주지방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이에 감복한 백성들은 감사히 여겨 장군이 죽은 후 사당을 지어 위패를 모시고 매년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화부산사(花浮山祠)가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고종 21년(1884)에 영남후손 홍두의 주선으로 중건하였고 1936년 강릉역의 부지가 확장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1993년 도로 확장사업으로 재실은 폐지되었고 경내에는 기적비(순충장열흥무왕화산재기적비)와 사당만 남아 있어 김해 김씨 종중에서 해마다 다례(茶禮)를 지내고 관리해오고 있다. 기적비의 비문은 한말에 도지부대신(度支府大臣)을 역임한 심상훈이 지었으며 김유신장군의 생애와 공적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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